연초부터 유통업계가 때아닌 '멸공'으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SNS 게시물에서 촉발된 논란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면서 확산하는 모양새입니다.
가정이지만 멸공이 횃불처럼 밈(meme) 현상으로 번져 젊은 층들에 인기를 끌고, 이마트가 경영권을 확보한 스타벅스코리아가 여기에 호응해 멸공라테, 멸공 다이어리 등 굿즈를 내놓을 가능성은 없을까요.(개인적으론 멸치향이 가미된 라테가 무슨맛일지 알고 싶진 않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물론 마케팅 차원에서도 최악의 선택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스타벅스 본사와 이마트가 맺은 계약서상 조항들 때문입니다.
이마트는 지난해 7월 스타벅스 본사로부터 스타벅스코리아 지분 17.5%를 4742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전까지 스타벅스코리아는 스타벅스 본사가 지분율 50%를, 이마트가 50%를 보유한 합작사(JV) 형태로 운영됐습니다. 스타벅스 본사의 나머지 지분 32.5%도 이마트의 재무적투자자인 싱가포르투자청(GIC)가 전량 인수했습니다. 이 거래로 스타벅스 본사의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은 전량 이마트 측에 매각됐습니다.
이 때 스타벅스코리아의 몸값은 2조8000억원으로 평가됐습니다. 이 거래는 현재까지 이마트입장에선 '신의 한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국 내 스타벅스의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2020년 약 3500억원 수준이던 상각전영업이익(EBITDA)가 지난해엔 4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마트 전체의 영업이익 중 절반 이상이 스타벅스코리아로부터 나오는 '효자'로 자리잡았습니다. 해당 거래로 지분율을 늘리면서 스타벅스코리아의 이익은 고스란히 이마트의 연결 재무제표에도 기록됩니다.
스타벅스 본사는 스타벅스코리아 지분 전체를 이마트에 매각하면서 외견상으론 지분율이 '0'입니다. 다른 거래라면 주식을 매각한 순간 '남남'이 되지만, 스타벅스 등 프렌차이즈 거래는 구조가 좀 다릅니다. 스타벅스 본사는 지분 매각 이후에도 스타벅스코리아 매출의 일정 부분을 브랜드 수수료로 얻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 실적의 상당부분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쌓아온 충성도에서 파생되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스타벅스는 이마트와 계약에서 여러 계약문구로 스타벅스코리아의 매출과 브랜드 가치 하락을 막고 수수료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를 숨겨 뒀습니다.
이는 두 그룹간 계약 이후 공시에서도 일부 드러납니다. 스타벅스 본사는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되는 경우 또는 △이마트의 귀책으로 인하여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된 경우엔 이마트가 소유한 발행회사(스타벅스코리아) 주식 전부를 인수할 권리를 가지고 지정한 자에게 인수권을 승계시킬 수 있습니다. 이때 주식매매가격은,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되는 경우에는 합의된 공정한 가치평가방법에 따른 가격이 △당사의 귀책으로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된 경우에는 공정한 가치평가방법에 따른 가격에 35% 할인율을 적용한 가격이 각각 적용됩니다.
해석하면 추후 스타벅스 측과 이마트 간 계약이 만료할 경우, 스타벅스 본사는 재계약을 진행하거나 옵션을 행사해 이마트로 넘긴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되사들일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 본사가 이 옵션을 행사하면, 서로 합의한 공정가치에 이마트는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매각해야합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매년 성장 중인만큼 이 조항만 봐서는 크게 불리한 모양새는 아닙니다. 어찌됐건 이마트가 손해를 볼 가능성은 적으니까요.
문제는 이 다음부터입니다. 이마트의 귀책사유로 무언가 계약상 합의사항을 어길 경우, 스타벅스는 35% 할인된 가격으로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되사올 수 있습니다. 올해 최소 스타벅스코리아의 기업가치가 3조원까지 늘었다고 가정하면, 이 금액만 해도 1조원이 넘습니다.
이같은 귀책사유엔 스타벅스 본사의 '브랜드'를 훼손하는 여러 방안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마트는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전량 인수했지만, 여전히 국내 신규 점포를 열거나 메뉴를 만드는 데 있어서 스타벅스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매장 인테리어와 굿즈 등에도 스타벅스 본사가 여전히 개입해 관여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때문에 '멸공라테'의 출시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가 됩니다. 스타벅스 본사 경영진이 특별히 반공의식이 투철하지 않은 이상 말입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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