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꾸면 팔자도 바뀔까. 아파트도 이름을 바꾸면 집값이 뛸까. 서울 강서구에서 마곡지구 아파트들이 시세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인근에 있는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이 '아파트 개명'을 통해 가치 올리기 나섰다.
강서구 내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방화동에서 단지 이름에 '마곡'을 넣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집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는 게 현지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초에도 이름이 변경된 곳이 있다. 지난 4일 ‘방화12단지 도시개발공사아파트’(930가구)는 ‘마곡중앙하이츠아파트’로 아파트 명칭변경이 처리됐다는 공문을 강서구청으로부터 받았다. 단지 이름을 바꾸기 위해 추진 중인 곳도 있다. ‘방화2-2그린아파트’는 단지 이름을 ‘마곡한강그린 아파트’로 바꾸기 위해 준비 중이다. 주민 동의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아파트 개명이 활발한 까닭은 마곡지구에 각종 개발호재들이 몰리면서 미래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대표적인 사업은 ‘마곡 마이스 복합단지 개발사업’이다. 마이스(MICE)는 전시·컨벤션·관광·전시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복합단지 개발·운영과 관련한 산업이다. 4차 산업의 ‘꽃’으로 불린다. 서울시는 마곡동 인근 김포공항 부지에도 마이스 시설이 포함된 복합시설 개발을 검토 중이다.
롯데건설은 2019년 사업자로 선정돼 월드컵경기장 면적의 9배 부지에 컨벤션센터와 호텔·업무·판매시설 등이 결합한 마이스 복합단지 ‘르웨스트’를 2024년까지 지을 계획이다. 사업비는 2조5000억원대다.
이름이 바뀌었거나 바꿀 예정인 단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방화동에 있다. 과거 방화동은 서울 서쪽 끝자락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마곡지구가 뜨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파트들은 방화동에 있지만 단지 이름에는 모두 '마곡'이라는 명칭이 포함됐다. 방화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요즘 마곡이 뜨고 있으니까 (집값 상승) 덕을 보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방화동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방화동은 강서구 내에서도 끝자락에 있어 상대적으로 집값 상승 혜택을 덜 받았다는 인식이 많다"며 "아파트 이름을 변경하는 것 역시 마곡지구 개발에 따른 긍정적 영향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근에는 부정적인 효과를 의식해 아파트 이름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 단지명에서 특정 시공사의 브랜드를 빼자는 식이다. 지난 11일 광주시 ‘광주 화정 아이파크’ 건설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하자 ‘아이파크’를 빼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개포 1단지 네이밍에 아이파크가 들어가면 가치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HDC현대산업개발의 현장 관리감독 수준을 믿을 수 없고, 아파트 가치가 떨어질 테니 단지명에서 아이파크를 빼자는 내용이다. 커뮤니티에서는 또 '아이파크 브랜드 적합도 조사'라는 주제로 '여전히 1군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부실공사 이미지가 강해져 기피하는 브랜드다'를 놓고 투표가 진행 중이다. 기피 브랜드라는 답변 비율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짧은 기간에 걸쳐 두 번의 사고가 발생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작년 국토부가 발표한 2021년 시공능력평가 9위를 차지한 10대 건설사 중 한 곳이다.
한편 아파트 명칭 변경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변경된 명칭에 부합하는 외관을 갖추기 위해 명판 등을 교체하고, 시공사 승낙과 전체 소유자 80% 서면 동의를 얻으면 구청 심의를 거쳐 바꿀 수 있다. 다만 명칭 변경에 따라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면 신청이 반려될 수 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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