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라화에 비하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상화폐)는 안전자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국 통화인 리라화의 극심한 변동성을 겪고 있는 터키인들이 리라화를 버리고 대신 암호화폐를 보유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9월 이후 미국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40% 폭락했다. 반면 달러 대비 비트코인의 가치는 지난해 11월까지 40% 급등했다가 이후 10% 하락했다.
블록체인 분석회사 체인앨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 바이낸스를 비롯한 3개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리라화로 암호화폐를 거래한 하루 평균 액수는 18억달러로 급증했다. 2020년 6월만 해도 1억~2억달러 수준이었다.
터키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암호화폐는 미 달러화에 가치를 고정시켜 변동성을 낮춘 스테이블코인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 데이터 제공업체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지난 가을 리라화는 달러, 유로화를 제치고 스테이블코인 테더 거래가 가장 활발한 통화로 자리매김했다.
터키인들이 암호화폐 ‘사재기’에 나선 이유는 터키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있다는 분석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기준금리를 낮춰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경제 통념과는 정반대 발상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중앙은행 총재들을 갈아치우며 자신의 경제관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지난해 터키 중앙은행은 연속해 기준금리를 낮췄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반(反)시장적 행태가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 20대 터키인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당혹스러운 금리 정책, 인플레이션 및 통계 신뢰도 하락 등으로 터키에서는 이제 암호화폐가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피난처’라는 평가를 받게끔 됐다”고 말했다. 터키 정부가 지난해 자국 내에서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쓰지 못하도록 했음에도 터키인들이 암호화폐를 모으는 이유다.
터키인들은 은행 예금도 리라화 대신 달러, 유로화로 하고 있다. 터키 은행 예금 중 3분의 2가 유로화나 달러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터키의 현재 상황상 만일 달러 예금을 인출하려는 ‘뱅크런’이 일어날 경우 이에 대응할 만한 외환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터키 정부가 달러 또는 유로화 예금을 리라화로 바꾸라는 지시를 은행들에게 내릴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터키 암호화폐 거래소 비틀로의 에스라 알페이 최고마케팅책임자는 “터키인들은 암호화폐를 장기적으로는 투자자산,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대응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의 한 20대 학생은 “터키인들에게 암호화폐는 이제 희망”이라고 WSJ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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