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설립한 애플은 이듬해 출시한 개인용 컴퓨터 ‘애플Ⅱ’의 대성공으로 한번에 스타기업으로 떠올랐다. 이 덕분에 1979년 나스닥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고,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위기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IBM이 1981년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것. IBM이 시장에 뛰어든다는 소식을 들은 애플은 1980년 급하게 ‘애플Ⅲ’를 내놨지만 설계 오류, 비싼 가격 등 어느 하나 내놓을 게 없는 제품이었다. 이 때문에 IBM의 ‘무혈입성’을 바라봐야만 했다.
창사 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애플은 기존 애플 시리즈와 완전히 차별화된 컴퓨터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나온 제품이 1984년 1월 24일 첫선을 보인 ‘매킨토시’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맥’의 첫 번째 제품이다. 이후 나온 제품과의 구분을 위해 ‘매킨토시 128K’라고도 부른다.
이 제품은 모토로라의 8메가헤르츠(㎒) 6800 프로세서와 128킬로바이트(KB) 메모리를 적용했다. 현재 판매 중인 ‘아이맥’처럼 9인치 흑백 CRT 디스플레이가 결합된 일체형 컴퓨터였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는 없었고 3.5인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FDD) 1개가 장착됐다. 당시 발매가격은 2495달러.
매킨토시가 이전 애플 시리즈는 물론 IBM의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사용자환경(UI)이었다. 이전의 컴퓨터는 문자를 직접 입력하는 명령줄환경(CLI·Command Line Interface)을 채용하고 있었다. 작동을 위해선 복잡한 명령어를 외워야 하기 때문에 접근 장벽이 높다. 반면 매킨토시는 그래픽사용자환경(GUI)을 택했다. 까만 화면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대신 마우스를 움직여 아이콘을 클릭하면 소프트웨어를 실행할 수 있었다.
엄밀히 최초의 GUI 컴퓨터를 만든 것은 애플이 아니라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소(PARC)였다. 이 연구소는 GUI뿐만 아니라 마우스, 이더넷, 레이저프린터,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 정보기술(IT)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기술을 개발한 전설적인 곳이다. 개발한 기술 대부분을 상용화하지 못했다는 다른 의미의 전설도 갖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이곳에서 GUI가 적용된 앨토 컴퓨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잡스는 100만달러어치의 애플 주식을 대가로 이 기술의 내용과 향후 제품을 개발할 권리를 얻었다.
광고 역시 범상치 않았다. 애플은 제품 출시 이틀 전인 1984년 1월 22일 미국 슈퍼볼 중계에서 60초 분량의 광고를 내보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이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IBM을 ‘빅 브러더’로, 애플을 ‘구원자’로 묘사한 이 광고는 그해 광고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매킨토시로 무장한 애플이 IBM의 세상을 전복하는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구적인 기술과 시대를 앞선 디자인을 내세웠지만 애플 특유의 폐쇄성이 발목을 잡았다. 기존 애플Ⅱ에서 쓰던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 없어 제품이 출시된 이후에도 쓸 만한 소프트웨어가 많지 않았다.
반면 IBM은 개방형 아키텍처를 택한 덕에 다른 회사들이 IBM PC와 호환되는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IBM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애플은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이 됐다.
매킨토시 부진을 계기로 애플 내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결국 잡스는 1985년 5월 이사회에서 대부분 보직을 박탈당하고 회사를 그만두기에 이른다. 회사를 나온 잡스는 6명의 직원과 함께 넥스트란 회사를 창업했다. 잡스는 GUI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곳에서 ‘넥스트스텝’이란 GUI 기반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훗날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넥스트스텝은 애플 기기에 적용되는 운영체제의 기반이 됐다. 맥 시리즈와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까지 애플의 모든 제품에 적용된 OS는 넥스트스텝에서 비롯됐으니 GUI에 대한 잡스의 집념은 결국 성공한 셈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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