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에서 선거 때면 온갖 좋은 말과 장밋빛 공약이 넘친다. 그 사이로 선동도 있고 포퓰리즘 공약도 있다. 논란이 되는 공약일수록 인기영합적 요소가 강한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를 새로 구성하는 총선이 있을 때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남발되는 선심공약은 때로 한국에서 더 심하기도 하다. 해주겠다는 것도 많다. 대머리 모발치료제를 건강보험에 포함시키겠다거나 군복무 병사의 월급을 한꺼번에 200만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이 그런 사례다. 막대한 비용, 재원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말이 없다.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정부가 임금 외에 돈을 준다는 공약도 그와 다르지 않다. 공공 분야가 아닌 민간의 비정규직에 정부가 일정 금액을 임금 보전(補塡)액으로 준다는 ‘비정규직 공정수당’ 제도는 타당한가.
민간이든 공공이든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보다 고용신분이 불안정한 데다 임금도 적을 때가 많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문제가 제기됐다. 비정규직이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이라는 중복차별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로 인해 고용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제적 격차 심화로 이어진다는 우려다. 그래서 경기도 등에서 제한적으로 시도된 비정규직에 대한 공공의 수당을 민간으로 확대해보자는 것이다. 2021년 경기도는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자 1792명을 대상으로 기본급의 5~10%를 지급한 사례가 있다. 이것을 확대해 하나의 정책으로 굳히면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가능한 한 비정규직을 줄이려 하지만, 비정규직은 갈수록 증가해 2021년 이미 사상 최대 규모에 달했다.
갈수록 현저해지는 일자리와 고용 형태의 양극화를 방치할 수는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하는 것이라면 공공부문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혜자가 너무 제한적이다. 단계적으로 밟아가더라도 고용시장 전체를 염두에 두고 진행돼야 전면적 양극화도 개선된다.
임금은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자율 의지에 따라 서로 이익이 맞을 때 결정되는 것이다. 고용의 안정성, 업무의 보람·자부심 같은 임금 외 요소도 중요한 게 고용시장이다.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임금이 낮다면 고용시장의 수급관계, 근로자의 생산성 등이 종합 반영된 결과다. 그러한 이런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소득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기에 정부 주도로 근로장려세제(EITC)와 강화된 실업급여를 포함한 고용보험제도가 있다. 많은 나라가 시행 중인 EITC는 저임금 근로자 우대 세제여서 정규직까지 포함한 저소득 근로자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다. 그 밖에 다양한 복지체계가 사회안전망으로 있고, 논란의 와중에 최저임금제도도 그래서 유지된다.
‘비정규직=저임금·고용불안’이라는 도식적 접근도 낡은 인식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심화되는 ‘탈(脫)노동 사회’에서는 자발적 비정규직도 적지 않고, 고소득 비정규직도 있다. 특정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전문직에까지 재정을 동원할 만큼 나라 살림에 여유도 없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정규직은 외면한 채 대기업 비정규직에 재정을 퍼붓는 게 ‘공정수당’이라면, 그 공정은 어떤 공정인가. 더 중요한 것은 사적 영역에 대한 거침없는 정부 개입의 위험성이다. 사적 자치, 계약자유 원칙은 헌법의 가치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더욱이나 5년 임기의 특정 정부가 고용·노동시장에 마구 개입·간섭하고 편향된 제도를 강요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고용시장의 왜곡만 심화시킨 채, 나라 전체로는 비정규직 수만 사상 최대로 늘려버렸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소수만 정규직이 됐을 뿐 다수는 취업 기회조차 못 가져 공정의 가치를 훼손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용·임금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
선거철에 표를 의식한 결과라지만, 경제원론과 반대로 가는 공약은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보호하겠다고 나설수록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현실에 눈감아선 곤란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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