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들이 지난달 주식을 수백억 원어치 대량 매도하면서 '먹튀 논란'을 빚은 데 대해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칼을 빼들었다. 카카오 공동체 임원진과 대표들을 대상으로 회사 상장 후 1~2년 내 주식 매도 금지 규정을 신설하면서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카오 직원들 사기 저하와 투자 시장 교란이라는 이중 리스크에 카카오의 다른 계열사 상장 일정에도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규정에 따르면 앞으로 카카오 계열 회사의 임원은 상장 후 1년간 주식을 매도할 수 없다. 스톡옵션 행사를 통해 받은 주식에도 예외 없이 매도 제한을 적용한다. 적용 시점은 증권신고서 제출일로부터 상장 후 1년까지다.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매도 제한 기간을 2년으로 늘려 엄격하게 제한한다. 임원들의 공동 주식 매도 행위도 금지된다.
상장사 임원 주식 매도에 대한 사전 리스크 점검 프로세스도 신설했다. 앞으로 임원이 주식을 매도할 경우 1개월 전 매도 수량과 기간을 미리 CAC와 소속 회사 IR팀 등에 공유해야 한다. 주식 매도 규정은 계열사를 이동해 기존 회사의 임원에서 퇴임하는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앞서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이사회를 열어 여민수 현 카카오 대표와 류 대표를 공동대표로 내정했다. 류 대표는 오는 3월 예정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카카오 공동대표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류 대표를 포함한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지난달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11월 화려하게 증시에 입성했지만 류 대표를 포함한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은 상장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8일 주식 총 44만주를 대량 매도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비판에 휩싸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류 대표는 지난달 8일 시간외매매로 카카오페이 주식 23만주를 매각했다. 1주당 매각 대금은 20만4017원으로 총 매각 대금은 469억원이다. 류 대표가 행사한 스톡옵션 물량으로 그는 당시 1주당 5000원에 스톡옵션을 행사했는데 이번 매각에 따른 차익은 457억원에 달한다.
류 대표뿐 아니라 이승효 카카오페이증권 신임 대표(5000주), 이진 사업총괄 부사장(7만5193주), 나호열 기술총괄 부사장(3만5800주), 신원근 기업전략총괄 최고책임자(3만주), 이지홍 브랜드총괄 부사장(3만주), 장기주 경영기획 부사장(3만주), 전현성 경영지원실장(5000주) 등도 주식을 매각했다.
투자 시장에서 경영진의 주식 대량 매도는 '고점'이란 인식을 심어줘 보통 악재로 작용한다. 특히 상장 한 달여 만에, 그것도 코스피200 특례편입일 당일 발생한 '악재'에 주가는 한 달 사이 25%가량 하락했다. 주가 안정을 위해 기관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고 보호예수를 거는 상황에서 경영진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해 특히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카카오 노조(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는 그룹 대표 내정 철회까지 요구하면서 "사측이 류 대표 내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사상 첫 쟁의 행위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노조는 류 대표로 인해 국회에서 '카카오페이 먹튀 방지법'까지 논의되는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류 전 내정자의 블록딜(지분 대량 매도) 사태가 계속 문제로 지적됐는데도 선임을 강행해 온 지난 과정은 결국 카카오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중단)을 선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카카오 계열사를 관장하는 콘트롤타워가 본사에 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을 뒤돌아보면 위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위원장은 "카카오페이의 성장은 내부 구성원의 피와 땀으로 이뤄 낸 결과인데 결실은 특정 임원에게만 집중됐다"며 "카카오페이 구성원들은 법정 근로시간 한도를 초과하고 포괄임금제로 연장근로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회사 성장을 위해 묵묵히 참고 일해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번 사태로 구성원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며 "이제는 구성원들 상처 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라고 목소리 높였다.
노조는 카카오 지분 7.42%를 보유한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에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동해 주총에서 류 대표 선임 안건에 반대표결 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카카오는 지난 10일 류 대표가 카카오그룹 대표 내정자 자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공시했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먹튀' 논란은 모회사인 카카오와 다른 계열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정부의 대형 플랫폼 기업 규제와 글로벌 조기 긴축 여파로 가뜩이나 하락세를 보이던 카카오 주가는 '류영진 발(發) 먹튀' 논란까지 더해지며 최근 한 달새 20% 가까이 하락했다. 카카오뱅크 주가도 급락해 상장 이후 최저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새해 들어 카카오 그룹 시총은 10조원 가량 증발했다.
카카오의 쪼개기 상장 역시 개인투자자들 분노를 사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 등 그룹 내 성장성이 높은 자회사를 쪼개 상장시키면서 대주주나 임직원, 투자 파트너들은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알짜 자회사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은 모회사의 수익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카카오 투자자의 불만이 누적된 상태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해 카카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모빌리티 등 계열사 상장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방침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그룹 내부적으로도 류 대표가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엄중한 후속 대응 조치를 취한 만큼 향후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소상공인 영역 침해 논란으로 김 의장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카카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또 악재가 터졌다"며 "카톡 보이콧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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