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가 지난주 막을 내렸습니다. 주요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 바이오 전문 기관 투자가, 의료계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이 행사는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로 꼽힙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이 행사에 초청받기만 해도 해당 회사의 호재로 받아들여지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몇 년째 영 힘을 쓰지 못하는,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로 전락했습니다.
과거 바이오기업들은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참석 자체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신약 개발에 대한 꿈 때문에 주가가 오른 바이오기업의 주가가 호재성 이벤트로 상승한 뒤 재료가 소멸되면 조정을 받는 일은 빈번했습니다. 작년과 올해엔 행사가 채 폐막하기도 전부터 주가의 힘이 빠졌습니다. 이벤트로서의 영향력 자체도 많이 사라진 모습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를 앞둔 반짝 효과도 없었습니다. 작년 12월 한 달 동안 KRX 헬스케어 업종 지수는 2.14%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그나마도 올해 들어선 직후에는 급락세를 보이며 4거래일만에 6.10%가 하락했고요. 지난 10일(현지시간) 행사가 개막됐다는 소식이 한국 증시에 반영된 11일(한국시간)과 12일에는 상승했지만, 13~14일에는 다시 급락했죠.
문제는 12일의 상승세와 13일의 급락세 모두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가 주가를 움직인 배경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KRX 헬스케어 업종 지수가 1.91% 급등한 지난 12일에는 에이비엘바이오의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이던 퇴행성 뇌질환 치료 이중항체 후보물질을 다국적제약사 사노피에 모두 10억6000만달러(약 1조2720억원)를 받기로 하고 기술수출한 겁니다.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도 7500만달러(약 900억원)으로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오랜만에 나온 1조원 넘는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의 훈풍은 하루만에 사라습니다. 바로 이튿날인 지난 13일에 메드팩토의 임상 관련 악재가 터지면서입니다. 메드팩토가 개발 중인 항암신약 후보물질 백토서팁과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의 병용 임상 2상에서 피부·간 독성 관련 부작용으로 사망 사례가 보고된 점이 한 의약 전문 매체의 보도로 전해진 겁니다.
보도에 따르면 메드팩토는 부작용을 조절하기 위해 해당 임상에서의 백토서팁의 용량을 줄이는 임상시험 계획 변경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했지만, 지난 10일 개최된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는 이를 부결처리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메드팩토는 지난 13일 장중 하한가를 기록했다가 소폭 회복해 27.54% 내린 상태로 마감됐습니다.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는 1983년부터 매년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제약·바이오 투자행사입니다. 주요 제약·바이오 회사, 의료기기 회사, 바이오 섹터에 투자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이 모여 비즈니스를 논의합니다.
올해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의 최대 성과로 에이비엘바이오의 1조3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이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계약금만 900억원을 줘야 하는 대형 계약을 투자행사에서 처음 만난 회사와 맺을리 만무하죠. 기술이전 계약을 맺을 때는 계약금 규모는 물론이고, 개발·상업화 권리가 인정되는 지역, 개발 단계 진전에 따른 마일스톤 규모, 상업화에 성공한 뒤 원개발사가 받을 로열티 규모 등을 합의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오히려 유한양행의 항암신약 렉라자(레이저티닙)가 다국적 제약사 얀센의 계열사에 기술수출된 사례를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가 거둔 성과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겁니다. 이 계약은 2018년 11월에 체결됐는데, 계약을 맺기 위한 논의가 그해 초에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부터 시작된 걸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기업들끼리의 은밀한 비즈니스 논의가 시작됐다는 걸 일반 투자자가 뉴스만 보고 인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포털에 행사 이름만 검색해도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여해 글로벌 회사들과 미팅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뜨는 바이오 회사가 수십 개가 나옵니다. 행사 참가 자체만으로 의미를 두기도 힘들어 보이고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외에도 바이오 섹터 투자자라면 눈여겨 볼만한 행사가 여럿 있습니다. 바로 의사들의 학회입니다. 질병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이기에,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죠. 의약품 시장의 규모가 큰 미국과 유럽에서 열리는 학회들 역시 참가(발표) 자체 만으로도 해당 질환을 치료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바이오기업들에게는 홍보 대상입니다.
여러 질환 치료제 중에서도 항암제 시장의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망한 의학 학회는 미국암학회(AACR)과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일 겁니다. AACR은 주로 암이라는 질병 자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ASCO에서는 암 환자를 치료하면서 얻게 된 지식이 발표되고요. 학회 이벤트에서 투자 정보를 얻을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이 나옵니다. 바로 학회 취지에 맞는 연구 결과를 들고 가는지 확인하는 거죠.
암세포 단계에서의 연구 결과가 주로 발표되는 AACR에서 후기 개발 단계인 임상 2~3상의 결과를 발표한다거나, 암 치료 방법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지는 ASCO에 세포실험 결과를 분석한 논문을 들고 참가한다고 홍보하는 바이오기업들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학회에 참가해 구두발표를 하는지, 포스터발표를 하는지에 따라 R&D 성과의 우열을 가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구두발표는 학회 참가자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연단에 올라 R&D 결과를 소개하는 겁니다. 포스터 발표는 입간판에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의 주요 내용을 게시하는 걸 말하죠.
다만 단순하게 구두발표된 연구결과가 포스터로 발표된 연구결과보다 대단하다고 도식화하면 안 됩니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의 학회 내 지위나 인맥이 연례학술대회 일정 수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니니까요.
바이오 섹터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작년은 악몽과도 같은 한 해였을 겁니다. 보통 대규모 투자행사나 대형 학회의 연례 학술대회 이벤트이 끝나면 주가가 조정받기는 해도, 해당 이벤트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하기 전보다는 높은 수준은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주요 컨퍼런스 이벤트가 종료된 뒤 바이오섹터의 저점이 더 낮아지는 현상이 반복됐죠.
급기야 이번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는 큰 모멘텀이 되지도 못하는, 관심조차 받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 모이는 곳에 돈도 따라간다'는 말처럼, 바이오섹터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고 싶은 투자자라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자리에 관심을 갖는 건 필요한 전략일 겁니다. 분명히 그 안에는 투자 수익을 내거나, 손실을 회피할 정보가 숨어 있을 테니까요.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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