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50일 가량 앞두고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는 후보 간 단일화다. 역대 대선 때마다 단일화는 선거판을 뒤흔들었고,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룬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최초의 단일화 시도는 그해 대선 때였다. 김영삼-김대중 후보 간 단일화 요구가 거셌다. 양측은 몇차례 만나 단일화 논의를 했다. 그러나 두 후보는 단일화 없이는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 지지율이 엇비슷한데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는 판단, 민주화 체제 이후 첫 대권에 대한 양김의 욕심과 특유의 자존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결과다. 선거 득표율은 노태우 후보 36.64%, 김영삼 후보 28.03%, 김대중 후보 27.04%로 양김은 승리를 놓쳤다.
지지율이 엇비슷한 2,3위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을 땐 승리하기 어렵다는 교훈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3당 합당을 하게 되는 동력이 됐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자가 손을 잡고 1990년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내각제 파동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김영삼 후보는 이를 발판으로 대선 승리를 쟁취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이른바 ‘DJP연합’은 단일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념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이회창 후보와 각축을 벌인 김대중 후보는 공동내각 구성과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연합을 이끌어냈고, 결과는 성공했다. DJ의 1.6%포인트 신승은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반대로 이회창 후보는 경선 불복으로 뛰쳐나간 이인제 후보(득표율 19.2%)를 잡지 못해 패배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도 성공 사례다. 이 역시 이념 성향으로 보면 맞지 않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후보 교체론까지 나온 노무현 후보가 대선 2주일을 앞두고 단일화 승부수를 통해 역전승을 이뤘다. 이회창 후보에 2.3%포인트로 이긴 것을 보면 역시 단일화가 결정적이었다. 반면 이회창 후보는 대세론에 취하고 아들 병역 문제 파문 등이 겹쳐 다시 패배의 쓴맛을 봤다.
2007년엔 일치감치 이명박 후보의 압승이 예고된 터여서 여야 모두 단일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2012년 문재인 후보는 대선 40일 가량 앞두고 정치 신인인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했다. 이 역시 이념 성향은 맞지 않았지만,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까지 밀리면서 지지율 3위로 내려앉자 취한 특단의 조치였다.
오는 3월 9일 실시되는 대선도 단일화 여부가 판을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상정해 볼 수 있는 단일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민주당+정의당’ 대 ‘국민의힘+국민의당’(시나리오 1), ‘민주당+정의당’ 대 국민의힘 대 국민의당(시나리오 2), 민주당 대 ‘국민의힘+국민의당+정의당’(시나리오 3),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대 국민의힘(시나리오 4), ‘민주당+새로운물결(김동연 후보)’ 대 ‘국민의힘+국민의당’ 대 정의당(시나리오 5), 민주당 대 ‘국민의힘+국민의당+새로운물결’(시나리오 6), 민주당 대 국민의힘 대 ‘국민의당+정의당+새로운물결’(시나리오 7) 등이다.
안 후보도 정권교체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는 만큼 시나리오 4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당이 국민의힘과 연대하는 것도 어려운 만큼 시나리오 3도 마찬가지다. 제 3지대 연대인 시나리오 7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재 대선 후보 여론 지지율을 감안하면 시나리오 1은 접전, 시나리오 2는 민주당 우위, 시나리오 5와 6은 국민의힘 우위를 점칠 수 있다.
무엇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손을 잡느냐가 최대의 관심사다. 올해들어 지지율이 부쩍 오른 안 후보가 ‘키맨’으로 떠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 후보의 지지율이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관망하고 있고, 안 후보 측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단일화를 먼저 꺼낼 경우 아쉬운 쪽이 돼버리고, 협상에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급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안 후보와 손을 잡지 않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윤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이 ‘시소게임’ 관계라는 게 입증된 마당이다. 연초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에서 빠진 지지율이 고스란히 안 후보 상승으로 이어졌다. 일단 윤 후보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단일화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설령 단일화 협상을 하더라도 그 전에 윤 후보의 지지율을 올려놓고, 안 후보의 지지율을 주저앉히는 게 급하다. 이 대표가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일시적 이탈 때문” “일장춘몽”이라고 비판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선 막판 단일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국민의당은 급할 게 없다. 안 후보도 연일 “단일화는 없다”고 외치고 있고, 국민의당도 “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당도 정권교체 명분에는 동의하고 있어 막판 단일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윤 후보와 안 후보 모두 ‘국민 판단’을 언급해 여지를 두고 있다.
문제는 단일화 조건이다. 단일화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1997년 DJP연합 모델과 같은 권력 나누기를 통한 공동 집권 방식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모델과 같은 여론조사 경선 승자는 후보가 되고 패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 내에선 DJP연합 모델에 가까운 ‘대통령-책임총리제’가 거론되고 있다. 후보들이 권력 분점, 여론조사 문구 등을 놓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양보할 수 있는 자세가 돼 있느냐가 단일화 성공 여부를 가르는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