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전문매체 유랙티브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유럽에서 가격 상한제 문제가 논쟁거리로 떠올랐다고 18일 보도했다. 물가 상승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자연스럽게 결정(보이지 않는 손)되도록 두지 않고 정부가 개입하는 정책이 정치권과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좌파 성향의 일부 미국 경제학자들도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특수상황에서 도입됐다가 폐기된 가격 상한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EU 회원국 중에서 가격 통제 정책을 새로 도입한 국가는 헝가리다. 헝가리는 다음달부터 밀가루 설탕 해바라기유 돼지다리 닭가슴살 우유 등 6개 식료품 가격을 지난해 10월 15일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헝가리는 지난해 11월 휘발유 가격을 L당 480포린트(약 1829원)로 묶어두기도 했다.
유럽이 해묵은 논의를 꺼내든 것은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5%로 2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가 가팔랐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지난달 유로존의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6%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에너지 요금에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에선 오는 10월부터 가격 상한선이 77% 뛰어오를 전망이다. 천연가스 도매가격이 오른 탓에 상한선이 조정되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유럽이 당분간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기로 한 만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캠퍼스의 경제학자 이사벨라 웨버는 가디언에 기고문을 싣고 “전략적인 가격 통제가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테판 브루크바우어 방크오스트리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에서 가격 통제가 어느 정도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이를 시행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 국가들이 가격 상한제를 도입할지는 미지수다. 유럽 물가를 관리하는 ECB가 비판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ECB 대변인은 “가격 통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른 당사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격을 동결하면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으며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랙티브는 “일부 기업의 지배력이 높은 시장에서 가격 통제 정책이 사용될 수 있다”며 “가격 통제 논쟁은 소비자물가의 향방에 따라 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