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은 김운범이 큰 인물로 보이길 바랐다고 했지만 저는 그보다 개인으로서의 김운범을 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극중 운범이 대선 후보로 결정됐을 때도 인간 김운범으로 보이길 바라며 연기했죠.”
설경구는 지난해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킹메이커는 원래 지난해 12월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재확산과 방역 강화로 개봉이 연기돼 설 연휴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킹메이커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1971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박정희와 맞섰던 신민당 후보 김대중과 그를 도왔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각색했다. “처음엔 배역 이름도 실명이었는데 그러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근현대사를 모두 아울렀던 분이라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연기할 때에도 실존 인물을 그대로 따라 하진 않으려고 했어요. 저와 실존 인물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한 것 같아요. 완전 무시하지도 않고, 따라 하는 것도 아닌 지점에서 연기했습니다.”
정치인 캐릭터인 만큼 연설 장면이 많아 이에 대한 고충도 심했다고 한다. “다섯 번 정도의 연설 장면이 나오는데, 성격 자체가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컸어요. 특히 영화에서 중요한 목포 연설 신은 촬영 두 달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죠. 대선 후보들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품엔 두 캐릭터가 상징하는 대의명분과 수단,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운범은 큰 판을 만드는 캐릭터이고, 킹메이커를 맡은 서창대는 복잡한 감정을 오가며 놀아야 하는 역할이에요. 저는 자리를 잡아주고 판을 깔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극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로는 “정의는 승자의 단어다”라는 이 실장(조우진 분)의 대사를 꼽았다. “정치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인은 각자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각자의 정의’는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죠.”
상대역을 맡은 이선균에 대해선 “기복이 없고 멘털도 강한 사람”이라며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잡아주는 사람이라서 든든했고, 그 덕분에 아주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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