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은 관훈동 당사에서 1987년 대선을 이겼다. 3당(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대선 후보가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사를 여의도로 옮긴 뒤에도 한동안 이곳에 자신의 사진을 걸어뒀다. 역시 무속인의 말 때문이었다.
묘터 옮기기는 비일비재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4수에 나서기 전인 1995년 전남 신안 하의도와 경기 포천에 있던 부모 묘를 경기 용인으로 옮겨 합장했다. 묘터를 잡아준 지관 손석우 씨는 “신선이 내려오는 천선하강형(天仙下降形)의 명당”이라고 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김종필 전 총리, 한화갑 김덕룡 이인제 정동영 전 의원 등도 조상 묘를 이장했지만 꿈을 이루진 못했다.
선거철만 되면 점집은 정치인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정보기관까지 역술가에게 선거 예측을 물을 정도였다. 집 동쪽으로 출입해야 길(吉)하다는 무속인 말을 듣고, 문이 없어 담을 타고 출퇴근했다는 정치인도 있다. 풍수를 신봉해 책상 위치를 바꾼 경우도 흔하다.
역술인들의 대선 예언이란 것도 어차피 50% 확률이다. 맞을 땐 ‘족집게’라는 광고를 내는 등 요란을 떨지만, 빗나간 사례가 더 많다. 이회창 정주영 박태준 이인제 후보의 당선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후보의 낙선을 예측한 유명 무속인들은 선거 뒤 이를 합리화하느라 바빴다. 종교를 가진 대선 후보들조차 풍수와 역술에 관심이 적지 않은 것은 한국인 내면에 스며든 무속의 기복(祈福)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해 대선판에도 어김없이 무속 논란이 거세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손바닥에 쓴 임금 왕(王), ‘역술인 멘토설’이 당 경선에서 쟁점이 되더니 최근 윤 후보 부부와 친분이 있는 무속인이 캠프의 고문이란 게 보도되면서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무속 시비의 빌미를 준 야당이나, 가십성 사안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여당이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 리더를 뽑는 선거가 맞나 싶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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