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시민재해’도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전관리 의무를 진 지방자치단체 243곳, 지방공공기관은 460개에 이른다. 적용 범위도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결함 등 산업재해 이상으로 폭넓다. 철도 탈선, 침수·감전 사고는 물론이고, 빙판길 미끄러짐 사고에도 지자체장이 형사처벌될 수 있다. 한 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거나 10명 이상이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중대시민재해 유형은 족히 수백 가지는 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 해설서 어디를 봐도 예방책임이 중앙부처 장관, 지자체장, 공공기관장, 도급·용역 계약을 맺은 사업주 가운데 누구에게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이란 법 규정이 너무나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적용 범위도 중구난방이다. 교량도로와 터널도로는 포함되는 반면 일반도로는 제외되고, 시외버스 사고엔 적용되는데 광역·시내버스는 포함되지 않는 식이다. 기업인 처벌에 집중한 탓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현장에선 벌써부터 ‘면피 행정’ 조짐이 나타난다. 공공기관장들이 도급·용역을 줄 때 해당 사업장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안전관리를 책임질 일 자체가 없었다는 일종의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것일 테다. 지자체장이 자칫 현직에서 퇴출될 수도 있는데 ‘도덕적 해이’ 탓만 할 수도 없다. 지자체와 공기업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중대재해법이 거꾸로 시민안전의 사각지대를 만들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을 두루 고려할 때 “중대재해법 보완은 없다”는 정부 입장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제라도 충분한 재논의를 거쳐 하루빨리 법령 보완에 나서야 한다. 오죽하면 부칙이라도 고쳐 법 시행을 당분간 미루자는 의견까지 나오겠는가 싶다.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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