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시대다. 멋진 로고나 엠블렘이 찍혀 있으면 검은색 무지 옷이라도 그렇게 이뻐 보인다. 자동차나 자전거 같은 탈것에선 흔히 '승차감'에 빗대 '하차감(下車感)'이라 부르기도 한다. 승차감은 솔직히 모르겠고, 하차할 때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몸에 느껴지기 때문에 붙여진 속어다.
'브랜드 효과'를 무시할 순 없다. 애플이 대표적이다. 맥북, 아이폰에 아이패드를 쓰면 앞서가는 디지털족(族)처럼 보인다. 브랜드가 이용자의 의식까지도 한껏 밸류업 시킨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나 수요자들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기를 자청하는 바람에 공짜로 광고하는 효과도 본다. 브랜드력(力), BI(브랜드 이미지 통일), 브랜드 가치란 말이 중요 마케팅 요소가 됐다.
'브랜드' 하면 유형의 상품부터 떠올리지만, 문화계에도 있다. 유명 예술인의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값비싼 브랜드다. 브랜드 있는 화가 그림이면 가격에 속된 말로 '0'이 하나나 둘이 더 붙는다. KBS교향악단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코심),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빚어진 '국립' 간판 논란도 브랜드 싸움의 일종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합창단, 국립오페라단, 국립극단 등이 있으니 국립교향악단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맞다. 과거 1969년 국립교향악단이 등장했으나, 1981년 그 운영권이 KBS로 넘어가면서 KBS교향악단이 됐다고 한다. 당시 국립교향악단을 이끈 지휘자 홍연택이 단원들을 데리고 나와 1985년 설립한 게 바로 코심이다.
문체부가 이 코심에 '국립' 브랜드를 달아주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KBS향이 바로 반발했다. 역사적 연원으로 보나, 지배구조로 보나 KBS향이 사실상 국립 오케스트라인데, 왜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느냐는 것이다. '국격', 국립이란 이름의 '무게'를 언급했지만, 결국 '실력'이 되느냐는 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주 실력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로 평가하긴 어렵다. 그동안 쌓아온 국내외 명성과 평가, 예술적 지향점 등을 다 따져봐야 할 것이다. 코심도 한국을 대표하는 정상급 오케스트라임은 불문가지다. 이러다보니 '우물 안 개구리'끼리 벌이는 도토리 키재기 경쟁이란 싸늘한 시각이 적지 않다.
과연 '국립'이란 간판의 가치가 '대표성'이란 자존심 지키기 외에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서구 유명 오케스트라의 기원을 따져봐도 '국립'보다는 특정 지역 음악가 협회라 볼 수 있는 '필하모닉'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다. 국립이란 간판을 달고 유명세를 쌓은 오케스트라는 프랑스와 러시아 정도밖에 안 떠오른다. 영국의 로열필하모닉, 네덜란드의 로열콘세르트헤바우, 독일의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 등 왕립, 시립이 오히려 더 유명하다.
국립이라고 해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실력을 보장해주는 브랜드도 아니다. 재밌는 건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이끄는 러시아내셔널오케스트라는 그냥 민간 단체인데, 내셔날이란 이름을 쓰기도 한다.
문체부는 예산의 75% 이상(연간 약 60억원)을 국비로 지원받는 산하 국립예술단체란 점을 들어 국립 브랜드 달기를 추진한다고 한다. 일리가 없지 않다. 다만, 그 다음 설명이 걸린다. 국립을 붙여 "공공성을 더 강화하겠다는 측면도 있다"는 부분이다. '공공'을 그렇게도 강조하는 이번 정부가 참 남다르다는 느낌이 또 든다. 예술이 국가주의와 공공성 강조 속에 얼마나 꽃피웠는지는 회의적이다. 과거 다른 나라 역사를 잠간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정부 예산 지원이 있어도 '국립'이란 이름을 달지 않은 예술단체, 대학교 등의 사례는 많다. KBS향도 따지고 보면 사실상 국립 아닌가. 두 단체간 실력 경쟁을 더 유도할 수 있다면, 지금 식으로 사실상 국립오케스트라가 둘이라고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예술적 성취야말로 '브랜드'에서 나오는 게 아니지 않나. 서울시향도 영문명은 그냥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번 국립교향악단 논쟁은 퇴행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간은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까지 진출해 경쟁하고 있는데, 예술분야만 '국립' 자존심을 둘러싸고 40~50년 전 사고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장규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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