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정선의 겨울은 뼈대만 남은 것처럼 앙상합니다. 정선을 가로지르는 동강도 반쯤은 얼어붙었습니다. 시리도록 푸른 물이 휘어져 돌아가는 골짜기는 드문드문 눈을 이고 고요 속에 잠겼습니다. 동강과 함께 정선을 대표하는 것은 만항재, 문치재, 두문동재, 병방치, 백봉령, 자개골, 싸리골, 박달재 등 한 굽이 돌 때마다 만나는 수없이 많은 고개입니다. 오죽하면 정선아리랑에서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 휘돌아서”라고 했을까요. 그래서일까요. 정선은 오직 꾸밈없이 순수한 것들만 자리 잡은 듯합니다. 순후한 자연이 그렇고, 정감 넘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해발 1330m인 함백산 만항재에 오르니 삭풍이 분다. 만항재는 국내에서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지리산 정령치(1172m)나 태백과 고한을 잇는 싸리재(1268m)보다도 높다.
만항재는 원래 눈꽃보다 ‘천상의 화원’으로 유명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로 뒤덮인다. 새벽이면 안개가 자주 몰려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야생화부터 눈꽃까지 사시사철 꽃이 만발한 만항재로 오르는 고갯길은 고원 드라이브의 정수로 꼽힌다.
고원 드라이브의 또 다른 명소는 문치재다. 정선 읍내를 빠져나와 지그재그로 이어진 해발 732m를 오르면 전망대가 보인다. 여기부터 급경사의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이 구간이 문치재다. 경남 함양의 오도재와 충북 보은 말티재, 신안군 흑산도 12굽이길과 함께 손꼽히는 고갯길이다. 문치재는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에 둘러싸인 문(門)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이야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찾는 여행지가 됐지만 가난한 시절의 문치재는 애환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도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길은 S자로 심하게 구불거린다. 오랜 시간 사진작가들의 촬영지로만 알려져 있다가 최근에는 롱보드 성지로 유명해졌다. 문치재는 도로 폭이 좁아 중간에 차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다. 한 번 진입하면 고갯길이 끝나는 무내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문치재를 넘으면 화암동굴·몰운대 등 화암팔경(畵岩八景)의 절경이 잇달아 펼쳐진다. 100년이 넘은 백전리 물레방아도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정선읍 북실리에도 또 다른 고개가 있다. 해발 583m인 병방치에 오르면 일명 ‘뼝대’로 불리는 경이로운 기암절벽, 한반도 지도를 닮은 밤섬을 휘감아 도는 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섬과 동강의 풍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병방치 스카이워크를 걸어야 한다. 절벽 끝에 U자형으로 돌출된 길이 11m의 구조물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병방치에서 읍내 쪽으로 나오면 대표적 전통시장인 정선아리랑시장을 만나게 된다. 끝자리 2일과 7일에 열리는데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지역 주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자들로 가득 찼던 곳이다.
정선 오일장은 정선만의 지역 먹거리가 매혹적이다. 쌉싸래한 향이 입맛을 돋우는 곤드레밥,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수수부꾸미, 후루룩 콧등을 칠 정도로 소리 내며 먹어야 맛있는 콧등치기국수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시장 어귀에 들어서니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가마솥 뚜껑같이 생긴 번철에 하얀 전을 부치고 있다. 종잇장처럼 얇게 편 반죽이 금세 익으면 그 위에 김치, 갓김치, 무채 등으로 버무린 소를 넣고 돌돌 만 메밀전병인데, 정선 주전부리의 대표 선수다. 메밀부치기는 메밀 반죽에 배춧잎을 올려 부친다. 밀가루 반죽으로 부치는 경상도식 배추전과 비슷하다. 심심해 보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달큰한 배추 맛이 매력적이다. 수수한 음식 속에 정선의 향기가 느껴졌다.
삼탄아트마인
정선=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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