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은 문화심리학자가 한·일 양국 국민의 집단 심성을 파헤쳐 소개하는 적나라한 해부도다. 겉으로 드러난 두 나라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콘텐츠를 비교·분석하면서 그 밑바탕에 있는 정서적·문화적 차이를 설명한다.
책은 시종일관 대비되는 양국 국민의 특성을 압축적인 화두를 통해 보여준다. ‘먹방의 나라 한국’과 ‘야동의 나라 일본’을 대비하고, ‘떼창하는 한국인’과 ‘감상하는 일본인’을 비교하는 식이다. 한국 탈(하회탈)은 표정이 크지만 일본 탈(노멘)은 표정이 없는 이유를 파고들고, 한국에서 ‘갑질’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일본에서 ‘이지메’로 사람들을 따돌리는 문화가 형성된 이유를 설명한다.
서구의 문화인류학자들은 한국과 일본을 모두 ‘유교 집단주의’ 틀에 뭉뚱그려 넣고 분석한 까닭에 두 나라 간에 별 차이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실상은 두 나라가 달라도 크게 다르고, 문화의 간극은 넓고도 넓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나와 남의 경계에 관한 두 나라 사람의 인식이다. 일본인은 내부와 외부, 자신과 타인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는 것과 동시에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반면 한국인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드백하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나와 타인의 경계는 언제든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국 간 문화 차이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지점에서 빚어진다. 다른 사람에게 ‘메이와쿠(迷惑·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은 게임기와 1 대 1 플레이를 하는 콘솔 게임을 선호한다. 반면 PC방도 혼자 가기 싫어할 정도로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강한 한국에선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능한 이들이 많다. 온갖 재료가 어울리는 비빔밥, 생선 살과 밥의 경계가 분명한 스시가 두 나라 음식을 대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람을 믿는 한국인과 시스템을 믿는 일본인의 갈림길이 시작되는 지점도 바로 나와 타인의 경계에 관한 부분이다. 심지어 사회 부적응자의 양태도 묘하게 차이가 난다. 오지랖 넓은 이가 많은 한국에선 산으로 들어가는 자연인으로,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일본에선 방구석에 파묻힌 히키코모리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성향은 한·일의 전통과 현대 문화에서 반복돼 재현된다. 한국의 귀신은 한 맺힌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면 쉽게 사라지지만 일본 귀신은 뚜렷한 자신의 영역이 있고, 그곳을 침범한 이들을 해친다. 일본인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현실에 없는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려 하고, 한국인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불편한 현실 세계와 대면하는 길을 택한다.
책은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본의 여러 모습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간 무심히 넘겼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이웃 나라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책장을 덮고 나면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과의 거리가 조금은 좁혀진 것만 같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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