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창업가가 묻고 싶은 질문들》은 원서 제목(Why Startups Fail)처럼 왜 스타트업이 실패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한다. 저자인 토머스 아이젠만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다. 20년 넘게 ‘기업 경영자’ 과정을 지도하며 수많은 창업가를 길러냈다. 동시에 수많은 실패 사례를 목격했다. 그중엔 그의 제자들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스타트업의 실패를 연구하기 시작해 지난해 미국에서 이 책을 펴냈다.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낮은 스타트업이나 코로나19처럼 불가항력 요인에 의해 무너진 스타트업은 탐구 대상이 아니다. 이 책은 유망했던 스타트업이 어떤 실수를 저질러 실패하게 됐는지를 살핀다.
그는 사람들의 통념을 반박한다. 예컨대 벤처캐피털(VC)에선 스타트업의 실패 원인을 말(제품 콘셉트)과 기수(창업가)에서 찾는다. 창업가가 경험과 투지, 통찰력, 리더십 등의 측면에서 부족했다거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큼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실패했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기업 경영은 경마처럼 말과 기수의 문제로 단순화할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창업가와 제품은 물론 직원, 전략적 파트너, 투자자 등 모든 이해 관계자가 스타트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1년 설립돼 2013년 문을 닫은 패션 스타트업 퀸시가 그런 예다. 퀸시는 직장 여성들이 싸면서도 몸에 잘 맞는 출근용 의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2명의 공동 창업자가 내놓은 해법은 남성용 맞춤 정장을 제작할 때처럼 여성 고객의 네 가지 신체 치수(허리-엉덩이 비율, 브래지어 사이즈 등)를 구체적으로 측정해 의상의 사이즈를 세분화하는 것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시드 머니로 95만달러를 투자받았다. 2012년 3월 정식 출시 후 매출이 달마다 급증했다. 그러나 수요가 늘자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오배송이 늘었다. 반품률은 35%까지 치솟았다. 현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 퀸시는 영업 시작 1년도 안 돼 문을 닫고 말았다.
물론 창업자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두 창업자는 우정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전략, 제품 디자인 등의 의사결정 권한을 동등하게 나눠 가졌다. 이로 인해 결정이 느렸다. 둘 다 의류 디자인 및 제조 경험이 없었다. 이런 문제는 다른 요소들로 보완될 수 있었지만 퀸시는 다른 곳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의류업계 베테랑 몇 명을 고용했는데, 이전 직장의 전문화와 분업화에 익숙한 이들은 스타트업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아웃소싱으로 제조를 맡긴 공장은 작은 스타트업의 주문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목표액 150만달러 중 95만달러만 조달해 줬다. 겨우 두 시즌만 버틸 수 있는 운영 자금이었다. 저자는 퀸시가 의류산업 경험이 있는 사람을 공동 창업자로 데려오거나, 믿을 수 있는 제조 공장을 파트너로 섭외하거나,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바른 자원을 갖고도 실패하기도 한다. 2009년 설립돼 2011년 문을 닫은 온라인 데이팅 스타트업 트라이앵귤레이트는 훌륭한 창업자와 개발팀, 넉넉한 투자금 등 모든 것을 갖췄다. 하지만 린스타트업(빠른 실행을 강조하는 기업 운영 방식)을 무분별하게 적용한 것이 독(毒)이 됐다. 고객층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살펴보지 않고 서비스 개발에 나섰다. 결과가 좋지 않자 린스타트업 방식에 따라 재빨리 서비스 방향을 바꿨지만, 역시 고객 분석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탓에 곧 막다른 길에 봉착하고 말았다.
책은 단순한 사례 나열에 그치지 않고 ‘다이아몬드-사각형 프레임워크’ ‘6S 프레임워크’ ‘속도의 함정 전개도’ ‘RAWI 테스트’ 등 체계적인 분석 도구를 함께 제시해 깊이를 더한다. 세간의 통념을 반박하며 스타트업에 관한 상투성을 탈피한 것도 장점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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