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 "월세 못내 보증금 까며 버팁니다"

입력 2022-01-20 17:20   수정 2022-01-27 16:15


“매출이 도저히 안 나와 8개월째 월세를 보증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증금이 절반밖에 안 남았네요.”

경기 동탄에서 3년째 포장마차를 운영 중인 김모씨(49)는 코로나19 이후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그 전보다 80% 이상 줄어 임차료를 내기 어려운 상황까지 떠밀렸다. 처음에는 대출을 받아 월세를 충당했지만 작년 4월부터는 보증금에서 월세를 차감하기 시작했다. 그는 “보증금 2000만원이 1000만원밖에 남지 않았고 대출금도 7000만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계약 해지 분쟁 1년 새 두 배 늘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월세를 내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엔 계약 해지 관련 임대차 분쟁이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폐업한 자영업자가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수 있는 법안이 지난 4일 시행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져 되레 분쟁이 늘어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에 접수된 상가 임대차 분쟁 조정 건수는 185건이다. 2017년 77건에서 2018년 154건, 2019년 180건으로 매년 늘어나다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엔 192건으로 불어났다. 특히 임대차 분쟁 건수 중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하는 ‘계약 해지’는 지난해 53건(28.6%)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올해도 이런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오리고깃집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월세가 밀려 보증금 80% 이상을 까먹었다. 그는 “가게 주변 회사가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매출이 급감했고 저녁 손님은 아예 없다”며 “보증금 5000만원에서 월세 330만원을 계속 내다 보니 보증금이 1000만원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늘자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사례도 증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2020년엔 임대료 감액 조정이 이슈여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작년에는 계약 해지 분쟁이 크게 늘었다”며 “대부분은 버틸 수 없는 자영업자들이 계약 기간 도중이라도 계약 해지를 요구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중도 계약 해지’ 가능해졌지만…
자영업자들의 임차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국회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작년 말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난 4일부터 시행 중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집합 제한·금지를 3개월 이상 받아 경제적 이유로 폐업한 자영업자는 임대인에게 3개월 전 통보하고 계약을 중도 해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창호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는 자영업자는 한 달도 버티기 힘든데 계약 해지 통보 후에도 3개월간은 월세를 내야 하고 원상 복구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 권리금까지 포기해야 한다”며 “차라리 임차료 지원이나 계약 일시 정지가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법으로 인해 분쟁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임대인도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 힘들고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약 해지 요구를 거부하고 소송이나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정된 법은 영세한 임대인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자본력이 약하거나 노후 생계를 목적으로 투자한 임대인의 피해가 가중될 수 있다”며 “영세한 임대인까지 감안해 법안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강호/양길성 기자 callm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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