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깊이 읽느냐도 중요하죠"
경기 파주에 있는 문학동네 편집부에 들어서자 까치발을 들고도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여기저기 책들이 높게 쌓여 있었다. 이렇게 책으로 쌓은 탑 사이에 자리를 잡고 소설부터 인문학 사회과학까지 다종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편집, 출간까지 도맡아 하는 사람이 바로 출판편집자다. 박영신 문학동네 출판편집자(45)는 올해로 21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지금까지 120종의 책을 만들어 온 그를 통해 출판편집자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문학동네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문학동네는 소설, 시 등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 출판사다. 물론 문학 이외의 책도 다양하게 출판한다. 문학동네 편집부 국내 2팀에서 비소설, 인문학 분야 책을 주로 편집하고 있다."
-편집자로 일한 경력은 얼마나 되나.
"2002년 여름 출판사 그린비에서 편집자로 시작해 창비를 거쳐 문학동네에서 일한지는 10년 정도 됐다."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달라.
"출판편집자는 세상에 널려 있는 조각 조각의 텍스트를 하나의 의미있는 이야기로 엮는 사람이다. 이미 완성된 원고에서 출발하는 경우에도 원고가 지닌 특별함을 먼저 알아보고 독자들과 만나는 길을 세심하게 닦아야 하고, 아직 작은 실마리만 가진 글이나 생각일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업무는 교정교열… 작가 디자이너와 끊임없이 소통"
-편집자의 구체적인 업무는 어떤 것인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건 교정·교열이다. 교정·교열자가 따로 있는 출판사도 있지만 문학동네는 교정·교열이 편집자의 역할이다. 단순히 맞춤법이나 오탈자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문맥을 보고, 문장이나 표현의 뉘앙스가 맞는지 작가와 늘 소통하면서 글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곱씹으며 읽는 일이기도 하다. 책 컨셉트에 맞는 디자인이나 판형을 선택하는 것도 편집자의 몫이다. 때문에 편집자는 작가와 디자이너, 출판사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조율자라고 보면 된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원고를 몇 번 정도 읽나.
"기본적으로 세 번 정도 정독하는데 경우에 따라 대여섯 번을 읽는 책도 있다. 세 번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매번 그 책 속에 빠져 읽는다. 꿈에 나올 정도로 깊게 말이다."
-편집자 한 명이 1년에 출간하는 책이 몇 권 정도 되나.
"우리 팀은 보통 한 명의 편집자가 세 달에 한 권씩 출간한다. 1년에 4~5권이다. 편집자가 방향을 잡고 책을 만드는 데만 세 달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 전에 작가를 발굴하고 소통하는 밑작업이 필요하다."
-밑작업 기간에는 어떤 일을 하나.
"작가를 섭외하고 작가가 글을 쓰는 시간이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그 시간 동안 편집자는 작가와 소통하면서 책의 방향을 설정해 나간다."
-작가와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
"끊임없이 소통한다. 어떤 방향이 좋을지, 어떤 글쓰기가 좋을지도 논의한다."
-작가와의 소통이 힘들진 않나.
"아직 그렇게 힘들게 하는 작가는 없었다.(웃음) 작가와 성격이 안 맞아 힘들다기보다는 마감 압박이 있다. 마감이 정해져 있는데 작가가 글이 나오지 않는 경우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 상황에선 편집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면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행히도 아직까지 최악의 상황까지 간 적은 없다.(웃음)"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등 20년간 120여편 출간"
-그 동안 출간했던 책 중 대표작을 꼽는다면.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한 권, 한 권 온 힘을 다해 만들었다. 그동안 120여편의 책을 만들었는데 그 중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문유석 작가의 전작,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천문학자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만든 책 중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혼자 내심 뿌듯해하는 책은 고병권 작가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편집자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든 책인데 얼마 전 서점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출간한지 20년 정도 됐는데 아직 절판되지 않은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작가님이 잘 쓰셔서 그런 것이겠지만 나도 한몫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가를 섭외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요즘에는 SNS나 브런치 등 워낙 다양한 플랫폼이 있어서 많은 글을 보고 듣는다. 좋은 글을 보면 직접 연락하기도 하고, 기존 작가들의 경우엔 기획안을 제안해 작업하기도 한다."
"SNS, 브런치 등 다양한 플랫폼 통해 신진 작가 물색… 일반인 등용 포인트는 문장력과 생각하는 방향을 표현하는 글"
-SNS 등을 통해 작가를 섭외할 땐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이다. 책을 낸 적이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문장력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올 초에 출간한 심채경 천문학자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도 그런 사례다. 심채경 천문학자가 한 매체에 쓴 칼럼을 보고 천문학자답지 않은 위트가 담겨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직접 연락을 드려 책을 만들게 됐다."
-일반인 중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 중에 본인의 스토리를 적어 출판사에 투고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왜 자신의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통찰력이 담겨져 있는 글이라면 책으로 만들어질 기회가 더 있을 것 같다."
-좋은 편집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어떤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속한 사회와 세상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안목을 가질수록 좋은 편집자가 아닐까. 그래야 현 시대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해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편식 없이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가능한 한 깊이 있게 읽어야 한다. 단시간에 축적할 수 있는 역량이라기보다 꾸준히 키워나가야 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독서 경험은 우리말 어법이나 어휘에 대한 지식과 감수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독서량이 일반인들보다 많을 것 같다. 책을 얼마나 읽나.
"보통 한 달에 50만원어치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온라인 서점 몇 곳은 플래티넘 회원이다.(웃음)"
-다른 편집자들도 비슷한가.
"다들 많이 보는 것 같긴 한데, 난 그 중에서도 많은 편이다. 그만 좀 사야지 하는데도 잘 안 되더라."
-주로 어떤 책을 보나.
"인문·사회과학, 학술서, 에세이, 자기계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구입하는 편이다. 온라인 서점도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구입한다."
"책의 만듦새가 어떤지, 주제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보며 주의깊게 읽어"
-편집자의 독서법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편집자들은 책의 내용만 보는 게 아니라 책의 만듦새가 어떤지,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본다. 작가들이 다른 작가가 쓴 책을 많이 보는 것처럼 편집자들도 다른 출판사나 편집자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는 편이다."
-편집자의 성향이 책 속에 함축돼 있겠다.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물론 책은 저자의 글쓰기에 모든 것이 달려있지만 책의 카피나 표지 등은 편집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소설을 제외한 에세이·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편집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가.
"다독도 물론 중요하지만 얼마나 깊이 읽느냐가 중요하다. 작가가 왜 이 글을 이렇게 표현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
-언제부터 출판편집자를 꿈꿨나.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대학도 공대(이화여대 생명공학과)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때 나름 공부를 잘 해 대학도 큰 무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 2년간 다니다 고민 끝에 서양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정말 부모님께 많이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공을 바꾼 이유가 있었나.
"공대를 다닐 때도 틈만 나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살다시피 했다.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대학에서도 늘 책과 있다 보니 졸업 후 자연스레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것 같다."
-편집자에게 전공이 중요한가.
"개인적으론 도움이 됐다. 소설이나 시 분야의 편집자들은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출신들이 많다. 대학 때 읽었던 책이나 전공 책들도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이과 계열의 책을 편집하려면 그 분야 지식이 필요하듯 편집자에게 다양한 지식과 경험은 좋은 덕목으로 작용한다."
"책은 없어질 수 없는 매체라고 확신"
-다양한 미디어가 생겨나면서 출판업계가 힘들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입사 때부터 20년간 들어왔다.(웃음) 출판업이 사양산업이라는 말도 꾸준히 들린다. 물론 책이 미디어의 중심이 아닐 수는 있지만 없어질 수 없는 매체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어떤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지는 출판인들이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책이 히트를 치면 편집자에게 인센티브가 주어지나.
"물론이다. 회사마다 인센티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편집자 개인에게 주어지기도 하고, 팀이 포상을 받기도 한다."
-편집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어떤 특정한 순간이라기보다는 책을 만들면서 독자들이 읽어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콕 집어 독자평이 나왔을 때 기분이 좋다. 왠지 동지를 만난 기분이랄까.(웃음)"
-편집자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책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과정 전체를 좋아한다. 편집자는 글 안에 들어가 있는 직업이라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거나 즐기지 못한다면 아마 할 수 없는 직업일 것이다."
-그런 면에선 편집자들의 성향이 비슷할 것 같다.
"편집자들 대부분이 엉덩이가 무겁고, 거북목에다가 자기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고양이과 부류가 많다. 우리의 일이 행간을 읽는 일이다 보니 내향적이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성향이 비슷한 것 같다."
-출판편집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직업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서울 북 인스티튜트(SBI·Seoul Book Institute)라는 출판학교가 있다. 편집자, 마케터 등 출판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곳인데 수료하면 출판사와도 연결을 시켜 준다. 현장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미리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출판인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서울북인스티튜트는 출판기획부터 편집·마케팅·디자인·제작·전자책까지 단계별 교육을 통해 출판인으로 양성해주는 교육기관이다. 2006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지금까지 750여 명의 출판인을 양성했다.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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