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완성차 제조사들이 속속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에 따른 공급망 불안으로 완성차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신차부터 중고차까지 자동차 생애 전 주기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해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미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올 여름 '카브라보'라는 이름의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다. GM은 카브라보를 통해 쉐보레와 뷰익, GMC 딜러들이 보유한 차량과 자동차 금융 자회사 GM파이낸셜이 렌터카 업체로부터 회수한 차량 등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GM의 고급 브랜드 캐딜락은 별도의 중고차 판매 플랫폼을 구축키로 했다. 현재 GM 미국 딜러들이 보유한 중고차 재고는 40만대 규모다. GM은 이 플랫폼에서 자사 차량과 다른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도 함께 판매할 계획이다.
GM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드는 건 성장 가능성 때문. 코로나19 여파로 발생한 글로벌 반도체 대란은 신차 생산 차질로 이어졌다. 이는 중고차 수요로 이어지면서 지난 18개월간 중고차 가격은 급등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중고차 가격은 연초 대비 20% 뛰었다.
스티브 칼라일 GM 북미 사장은 "중고차 시장은 지난 5년간 꾸준히 성장했다"며 "수요가 꾸준하고 신차보다 경기 침체에 덜 취약하다"고 말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신차 공급이 줄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중고차 시장에서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미 자동차매체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중고차는 4090만대가 팔려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신차(8415만대)의 약 절반 규모에 달한다. 반면 미국의 지난해 신차 판매는 1493만대로 팬데믹 이전 5년 평균(1700만대)보다 12% 줄었다.
국내에서도 현대차, 기아 등이 중고차 시장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각각 경기 용인시와 전북 정읍시에 자동차매매업 등록 신청을 했다. 자동차 매매를 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에 사업 등록을 해야 하는데 자동차 매매업 등록 기준에 따르면 연면적 660㎡ 이상의 전시시설을 갖춰야 한다.
현대차와 기아가 보유한 용인과 정읍의 부지가 이러한 등록 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에 우선 해당 지자체에서 사업 등록 신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는 기존 부지 활용 또는 부지 매입을 통해 추후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도 중고차 전시장을 운영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여전히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3일 현대차를 대상으로 중고차 판매와 관련해 사업개시 일시정지 권고를 내렸다. 앞서 중고차 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이 중소기업중앙회에 현대차와 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아달라며 사업조정 신청을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중기부는 현대차에 기존보다 더 강화된 상생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의 일시 정지 권고가 강제는 아니며, 정부의 지침을 최종적으로 따르지 않을 땐 과태료가 부과된다.
전 세계에서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고 있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에선 포드, 유럽에선 스텔란티스, 일본에선 도요타가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소비자 요구가 커지고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자동차 생애 전주기로 확대되는 추세라 완성차 업체들이 더 이상 중고차 시장 진출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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