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혁명'보다 '작은 친절'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2-01-21 17:52   수정 2022-01-22 00:09


추운 겨울날이었다. 낡은 차를 몰고 퇴근하던 브라이언 앤더슨은 한적한 길가에 서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그는 할머니의 자동차 뒤에 자기 차를 세우고 “제가 도와 드릴게요. 추우니까 차 안에 들어가 계세요”라고 말했다.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한 그에게 할머니가 고맙다며 사례를 하려고 했다. 그는 부드럽게 사양하며 “정 그렇다면 다음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몇㎞를 가다가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여종업원이 젖은 머리를 보더니 깨끗한 수건을 챙겨 줬다. 그녀는 만삭의 몸인데도 친절하고 상냥했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100달러를 내밀고 자리를 떴다. 그녀가 거스름돈을 가져오니 냅킨 위에 메모가 있었다. “내가 당신을 도운 것처럼 오늘 누군가 나를 도와줬어요.”

냅킨 아래에는 100달러 지폐가 넉 장 더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곧 출산이라 돈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그 할머니는 어떻게 알았을까”라며 잠든 남편에게 속삭였다. “다 잘 될 거예요. 사랑해요.” 그 남편은 바로 몇 시간 전에 할머니를 도운 브라이언 앤더슨이었다.
'포도 한 송이'로 유명해진 백화점
잭 캔필드의 스테디셀러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일화다. 이 책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휘청거렸을 때, 수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리며 친절과 배려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세상을 따뜻하게 밝히는 힘은 거창한 혁명이나 구호보다 생활 속의 작은 친절에서 나온다.


개인 삶만 그런 게 아니다. 기업 경영에서도 친절은 성공의 씨앗이다. ‘호텔왕’으로 불린 조지 볼트의 사례가 유명하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 필라델피아의 작은 호텔 종업원으로 일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한밤중에 노부부가 호텔을 찾아왔다. 하지만 빈방이 없었다. 그는 지쳐 보이는 노부부에게 자신의 방을 내주고 의자에 기대 눈을 붙였다. 그 덕에 노부부는 하룻밤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2년 후 그에게 뉴욕행 티켓이 든 초청장이 날아왔다. 그를 맞이한 노부부는 새로 생긴 최고급 호텔로 안내했다. “아유, 이렇게 비싼 데서는 못 잡니다.” “그게 아니라 자네를 위해 신축한 호텔이라네. 여기 총지배인을 맡아주게.” 이렇게 해서 그는 세계적인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초대 지배인이 됐고 이후 굴지의 ‘호텔 제국’을 일궜다.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백화점 창업자는 생전에 늘 “물건이 좋고 나쁜지 미리 고객에게 알리고 팔아라. 빈부귀천에 따라 손님을 차별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의 뜻은 대를 이어 지켜졌다.


1986년 봄, 낡은 옷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식품부에 들어왔다. 포도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그녀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이를 지켜보던 여직원이 조심스레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포도를 꼭 사야 하는데 돈이 2000엔밖에 없다”고 했다. 포도 한 송이값은 1만엔이었다. 직원은 생각에 잠겼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직원은 가위를 가져왔다. 1만엔짜리 포장 상품에서 2000엔어치를 잘라낸 뒤 포장지에 곱게 싸 여인에게 건넸다. 그 여인은 포도를 안고 서둘러 뛰어나갔다. 두 달 후 한 의사의 독자 투고가 신문에 실렸다. 이를 통해 여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졌다.

의사는 ‘백혈병을 앓던 11세 여아가 마지막 소원으로 포도를 먹고 싶어했는데 부모가 너무 가난해서 들어줄 수 없었다’며 ‘그 소원을 들어준 다카시마야의 여직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썼다. 이를 본 사람들은 펑펑 울었다. 이 일로 최고의 명성을 얻은 다카시마야 백화점은 포도 한 송이의 서비스 정신을 판매 교본에 넣고 사원교육의 주요 지침으로 삼았다. 이 회사의 사훈은 ‘우리의 목표는 친절’이다.


젊은 시절 받은 친절에 감동적으로 보답한 사람도 많다. 이 가운데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을 세계 최고로 키운 하워드 켈리의 실화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는 대학 시절 방문 판매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하루는 배고픔에 지친 그가 어느 집 문을 두드리고 물 한 잔을 부탁했다. 그 집 소녀는 그가 굶주린 것을 알고 커다란 컵에 우유를 가득 담아왔다. 10여 년 뒤 그는 훌륭한 의사가 됐다. 그 소녀는 안타깝게도 희귀병에 걸려 고생했다.
"친절은 짧지만 메아리는 영원"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병원에 그녀가 입원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모든 의술을 동원해 지극정성으로 치료했고, 그 덕분에 그녀는 생명을 구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치료비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윽고 청구서가 도착했다. 거기에는 ‘치료비 총액: 한 잔의 우유로 이미 다 지급됐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오래전에 뿌린 친절의 씨앗이 위대한 생명의 꽃으로 만개한 사례다. 또 한 사람, ‘현존 최고의 영어권 단편소설 작가’로 불리는 조지 손더스가 생각난다. ‘미국 대학 졸업식 최고 축사’(2013)로 선정된 시러큐스대 졸업식 축사에서 그는 “내 평생 최대의 후회는 친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여러분이 멋진 인생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친절하라”고 말했다.

그의 당부처럼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얽힌 것들을 풀며, 모든 비난을 멈추게 한다. 톨스토이도 “당신이 선량함을 베풀고 친절로써 증오에 맞선다면 무엇보다 당신 자신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친절한 말 한 마디는 짧아 보이지만, 그 메아리는 온 세상을 돌아 마침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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