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는 발끈했다. 종단 대변인, 중앙종회, 교구본사주지회의 등이 잇달아 사과를 요구했으나 정 의원은 거부했다. 불교계의 항의 방문이 잇따랐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대선 후보가 대신 사과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정 의원은 지난해 11월 25일 조계사를 찾아가 “원행 총무원장을 뵙고 사과드리겠다”고 했으나 문전박대 당했다. 이미 불심(佛心)이 돌아선 뒤였다.
문화재 관람료 문제는 불교계의 오랜 숙제다. 국립공원을 비롯한 전국 주요 명산의 상당 부분은 사찰 소유지다. 예컨대 가야산국립공원에서 해인사 소유 토지는 약 37.5%, 내장산국립공원에서 내장사 소유지는 약 26.2%다. 월정사 땅은 오대산국립공원의 17.8%에 달한다. 하지만 국립공원으로 묶이면서 사찰이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 지 오래다. 오히려 국립공원은 모두 국가 소유지라고 오해한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신세가 됐다. 그러면서도 사찰 소장 문화재 관리의 책임은 스님들 몫이다.
일이 이렇게 된 건 2007년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면서다. 그전에는 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를 통합 징수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찰들이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일주문 근처에 매표소를 설치해 독자적으로 관람료를 징수하자 “나는 절에 안 가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잇달았다. 스님을 ‘산적’으로까지 비유하는 험악한 사태로 번졌고, 정 의원의 발언은 누적된 불만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천은사 등 일부 사찰이 관람료를 폐지했지만 여전히 24개 사찰이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관람료의 징수 책임을 사찰에 떠넘겨 국민으로부터 지탄받게 한 정부가 사찰에 토지 사용 대가를 지급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천주교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편향적인 종교 관련 행보도 조계종은 문제 삼고 있다. 대통령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공공 영역에 투영돼 정부와 공공기관 사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불교계는 지속적으로 정부의 종교 편향을 지적해왔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청와대에서 축복 미사를 거행했고, 해외 순방 때마다 마지막에 성당을 방문하는 게 관행으로 이어졌다는 것. 국가인권위원회 공식행사를 명동성당에서 개최한 점도 문제 삼았다. 천진암과 주어사 등 불교 유적이 천주교 성지가 된 점도 편향 사례로 거론된다. 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 해외 순방 때마다 현지의 가톨릭 지도자를 만났고, 청와대가 교황과 면담을 ‘알현’이라고 표현한 것도 거북해한다.
정부·여당에 천주교 신자들이 다수 포진한 점도 뒷말을 낳고 있다. 가톨릭 편애 외에 전국 19개 국공립 합창단 지휘자나 예술감독을 기독교 신자 위주로 임명하는 등 불교만 소외됐다는 인식도 있다. 지난해 5월 청와대 불교 신자 모임인 청불회 회장으로 종교가 없는 이철희 정무수석이 뽑힌 것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불신이 쌓이다 보니 청와대의 일거수일투족이 반불교적 행보로 해석되는 셈이다.
누적된 불신과 오해에 정부·정치인의 실언과 미숙한 대응까지 겹쳐 당장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조계종은 정 의원 출당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달 신자들까지 대거 참여하는 범불교도대회 개최도 검토 중이다.
김동욱/고은이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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