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건너편에서 한숨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그는 지난 21일 방역당국이 발표한 ‘코로나19 장례지침 개정안’ 기사를 보고 화가 치밀어 전화기를 들었다고 했다. 개정안에는 ‘선(先)장례·후(後)화장’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20년 2월 보건복지부가 세운 ‘선화장·후장례’ 지침을 폐기한 것. 당시 방역당국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코로나19 전염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며 선화장·후장례 지침을 밀어붙였다. 코로나19 정체를 잘 몰랐던 초기에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지만, 2년간 각계에서 “시신을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된 사례가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는데도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선화장·후장례를 해야 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달라”는 요구는 코로나19 상륙 직후인 재작년 3월부터 있었다. 당시 대구에 사는 A씨는 코로나19로 남편을 잃었지만,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남편을 보내야 했다. A씨 역시 코로나19로 격리 중이라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격리 후라도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선화장 후장례 원칙 때문에 제대로 된 이별조차 할 수 없었다. A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선 “도대체 근거가 뭐냐”는 질문이 쇄도했지만 방역당국은 제대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일반인이 아닌 전문가들이 문제 삼았을 때도 방역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재작년 9월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감염내과 교수)이 “바이러스는 숨을 쉴 때 나온다. 코로나19 사망자를 화장시키는 건 아무런 의학적, 방역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지만, 방역당국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코로나19를 잘 몰랐을 때 우리와 같이 선화장·후장례를 했던 싱가포르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각계의 지적에 일찌감치 지침을 바꿨지만, 어쩐 일인지 ‘과학에 기반을 뒀다’는 K방역은 가던 길을 고수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6000여 명이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이 중 4000여 명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장례지침 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이후에 떠났다.
방역당국의 무능과 무관심은 이렇게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큰 상처를 남은 이들에게 안겼다. “지금이라도 바뀌어서 다행”이란 말 대신 “그동안 뭘하다 이제서야…”란 푸념이 유족들의 입에서 먼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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