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망한 부유한 씨의 가족으로는 아내 전업주 씨와 딸 부하나, 아들 부둘희가 있습니다. 부유한 씨는 별다른 유언 없이 사망했는데, 사망 당시 그의 명의로 된 재산으로 반포에 소재한 시가 70억원 상당의 건물이 있습니다.
사업을 크게 하던 아들 부둘희 씨는 경기가 악화되면서 부도가 나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부둘희 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아봐야 자신의 채권자들에게 강제집행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아예 상속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지요.
부둘희 씨는 누나 부하나 씨를 설득해서 남매가 둘 다 상속을 포기하고 건물은 어머니가 단독으로 상속받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아직 어머니가 건강하시니 남매는 상속을 포기하고,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때 남매가 건물을 다시 상속받는 방식으로 후일을 도모하자는 것이지요. 가족 간에 정이 각별했던지라 누나도 수긍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협의분할에 따라 건물에 대해 전업주 씨 단독명의로 소유권등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상속세 약 7억원은 단독상속인이 된 전업주 씨가 전액 납부했습니다. 이들 가족의 전략은 똑똑한 선택이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부둘희 씨의 상속포기는 그 효력이 부인됩니다. 돌아가신 부유한 씨가 남긴 건물에 대해서 부둘희 씨에게도 법정상속비율(7분의 2)만큼 상속이 이루어지고, 해당 상속지분만큼 부둘희 씨의 채권자들이 강제집행을 할 겁니다.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다29119, 판결]부둘희 씨의 채권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상속포기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리 없죠. 채권자들은 상속을 포기하는 협의분할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것입니다. 이러한 소송에서 채권자들이 승소하게 되면 전업주 씨 명의로의 단독상속은 효력이 부인됩니다. 일단 법정상속분대로 전업주, 부하나, 부둘희를 공동소유자로 하는 건물상속등기가 이루어질 겁니다.
상속재산의 분할협의는 상속이 개시되어 공동상속인 사이에 잠정적 공유가 된 상속재산에 대하여 그 전부 또는 일부를 각 상속인의 단독소유로 하거나 새로운 공유관계로 이행시킴으로써 상속재산의 귀속을 확정시키는 것으로 그 성질상 재산권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이므로 사해행위취소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한편 채무자가 자기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을 매각하여 소비하기 쉬운 금전으로 바꾸거나 타인에게 무상으로 이전하여 주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자에 대하여 사해행위가 되는 것이므로,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가 상속재산의 분할협의를 하면서 자신의 상속분에 관한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일반 채권자에 대한 공동담보가 감소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채권자에 대한 사해행위에 해당한다.
배우자 전업주 씨와 자녀 부하나, 부둘희의 법정상속비율은 각각 1.5대 1대 1입니다. 70억원짜리 부동산이라면 전업주 씨는 30억원의 비율로, 부하나 씨와 부둘희 씨는 20억원의 비율로 상속받게 될 겁니다. 부둘희 씨의 채권자들은 70억원짜리 건물에 대해서 부둘희 씨의 법정상속비율인 20억원만큼 강제집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해행위취소는 이미 납부한 상속세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70억원짜리 부동산에 대한 상속세로 7억원만큼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면, 누가 냈든 이미 납부는 종결된 겁니다. 자신의 상속비율을 넘어서 냈다 하더라도 반환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상속포기와 같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미리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빚이 많은 상속인이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에 채권자들로부터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