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8편의 짧은 소설을 담았다. 그중 4편이 SF 이야기다. 본격 SF처럼 설정과 상상이 기발하다곤 할 수 없지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흡입력이 상당하다. 탄탄한 문장 속에 묵직하면서 따뜻한 감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연작 ‘X-이경’과 ‘X-현석’은 소행성 X와 지구의 충돌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재회한 옛 연인 이경과 현석의 이야기를 그렸다. X가 지구와 충돌해 세상이 멸망할 확률은 25%. 이 모호한 확률 속에 사람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네 번에 세 번은 살고 한 번은 죽을지 모른다는 삶의 새로운 조건은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의 비관으로 변형되기에도, 그렇다고 아무 일 아닌 양 무시하고 넘기기에도 애매했다.”
2254년, 인류의 마지막 영토가 된 돔 안을 배경으로 한 ‘CLOSED’에서는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한 깊은 고찰이 드러난다. ‘생명 연장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신체 조건은 40대에 고정된 채 233년째 살아 있는 넬. 그는 어느 날 이 돔 안의 사람이라고는 자신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로봇 수행원 HN0034는 넬의 말을 망상이라고 일축하면서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혹시 생명 연장을 중단하고 싶은 건지 묻는다. 어쩌면 최후의 인류일지도 모르는 넬은 영원한 고독이라는 공포와 마주한다. “HN0034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넬은 말했다. 넬은 체온을 나누고 싶겠지만 수행원의 은빛 표피에 있는 건 잔량의 전기에너지가 발산하는 열감뿐일 터였다.”
‘귀환’은 우주선 고장으로 16년간 우주를 떠돌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하는 은정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구에선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은정은 귀환선을 타고 직접 지구에 내려가 보기로 하는데, 귀환선이 제대로 작동할지 장담할 수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전 지구적 차원의 사건과 조우하면서 절망과 체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삶을 영위해 간다.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이 세계의 귀퉁이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 자주 고민하곤 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