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나와"…CJ대한통운 노조의 '생떼'

입력 2022-01-26 17:08   수정 2022-01-26 23:50

“설 이후에는 난장을 만들어 사회적 문제로 부각하는 투쟁이 돼야 한다. 이재현 집 앞을 하루 종일 시끄럽게 하고 골목 전체를 선전물로 도배해 동네에 부끄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고위 간부가 지난 25일 밤 단식농성 중단을 선언하며 밝힌 ‘투쟁 지침’이다. 한 달째 파업 중인 CJ대한통운 노조의 파업 전선을 이재현 CJ그룹 회장으로 옮겨가겠다는 것이다. 벌써 CJ그룹 본사와 이 회장 집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재현 XXX’라는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의 낙서도 등장했다.

투쟁 방법도 거칠지만 문제는 노조가 정부, 시민, 기업, 동료 택배기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주무부처의 조사 결과마저 무시하며 폭주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개입을 자제하던 국토교통부는 파업이 장기화하자 24일 “현장을 점검한 결과 택배회사가 분류인력 투입 등 합의 사항을 양호하게 이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파업에 돌입한 노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결과다.

그럼에도 노조는 곧바로 “국토부가 CJ대한통운에 면죄부를 줬다”고 반발한 뒤 “CJ대한통운은 택배비 인상분 5000억원 중 3000억원을 이윤으로 빼돌리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택배업체는 황당해하고 있다. “대한통운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3650억원 수준인데, 노조 말대로 연 3000억원의 이익이 추가되면 주가가 8년 만의 최저치 수준이겠느냐”는 반응이다.

노조는 설을 앞둔 시민들의 호소도 무시하고 있다. 설 대목을 앞둔 소상공인들은 ‘대혼란’을 겪고 있다. 신선식품이 터미널을 떠돌다가 상한 채 반송되고, 다른 택배사들까지 과부하가 걸려 설 선물 배송 지연이 반복되고 있다. CJ대한통운을 이용하고 있는 한 소상공인은 “파업 때문에 작년 설보다 매출이 30% 이상 줄어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했다.

동료 택배기사들은 파업의 볼모가 되고 있다. 전체 기사의 90%를 차지하는 비노조원 일부는 23일 집회를 열고 “파업으로 거래처가 끊기고 수입도 줄었다”며 파업 중단을 호소했다. 일각에선 일반 노조원조차 집행부의 희생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터로 복귀하고 싶은 노조원들을 집행부가 “제명·보복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택배기사는 “설이 낀 달이면 CJ대한통운 기사는 월 800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데 파업자들은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있다”며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막는 기사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결국 노조 집행부가 논리적으로 궁지에 몰리자 오기에 찬 ‘재벌 회장’ 저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대부분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투쟁 방식이다. “무리한 파업으로 일자리가 생기는 건 노조 수뇌부뿐”이라는 일선 택배기사들의 비판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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