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웍스, 넷플릭스, 소니픽처스…. 세계 콘텐츠 시장을 이끄는 이들 글로벌 기업엔 실력이 뛰어난 인재가 모여 독창적이면서도 재밌는 작품들을 개발한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애니메이션 아트디렉터 셀린 킴(본명 김다혜·32)은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다. 2017년 드림웍스에 입사해 첫발을 뗀 뒤 2019년엔 넷플릭스, 새해 벽두엔 소니픽처스에 영입됐다. 초고속 승진도 이뤄냈다. 드림웍스와 넷플릭스에서 시각개발(visual development)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그는 소니픽처스에선 아트디렉터로 일한다. 셀린 킴은 “이제 5년 차인데 아트디렉터가 됐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얼떨떨하다”며 웃었다. “전에는 10년 차, 20년 차도 쉽게 아트디렉터가 되지 못했어요. 하지만 콘텐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실력만 뒷받침되면 경력과 상관없이 기회를 주는 시대가 열리는 것 같아요.”
“지금까진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세계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캐릭터가 있는 공간과 입고 있는 옷 등을 하나씩 만드는 거죠. 아트디렉터는 여기서 나아가 이를 연결하고 관리합니다. 다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노를 저을 수 있도록 하죠.”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계원예고를 거쳐 홍익대 미대 시각디자인학과에 들어간 이유다.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을 품게 된 건 대학 3학년 때였다. “당시 ‘드래곤 길들이기’ ‘라푼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애니메이션이 어른들에게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저도 그런 ‘어른들이 만드는 동화’를 꼭 제작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이후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에 있는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으로 향했다. 굴지의 애니메이션 디렉터들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드림웍스, 픽사 등 여러 회사의 인턴십 채용에 지원했지만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셀린 킴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더 큰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는 인턴십 채용 때마다 관련 회사 전부에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냈다. 계속 낙방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도전했다. 졸업할 때가 되자 셀린 킴은 각 회사의 채용 담당자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드림웍스에 입사하게 됐다. “끊임없이 작업하고 그것들로 계속 문을 두드린 게 통했던 것 같아요.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걸 눈여겨보셨던 거죠. 다른 분들도 당장은 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도전하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분명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그는 작품의 영감을 주로 자신의 경험에서 얻는다고 했다. “제 포트폴리오가 곧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 자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예요. 졸업작품 ‘팬텀 오브 오페라’도 어릴 때 제가 재밌게 본 원작 뮤지컬과 유럽에서 살았던 경험을 함께 녹여 그렸어요.”
평소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감상한 것도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편이에요. 특히 다큐멘터리를 보면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요. 문어나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몬스터 디자인과 움직임 등을 생각해내기도 해요.”
그는 최근 그림으로 K팝을 포함한 K컬처를 알리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있지(ITZY) 등 주요 아이돌 그룹을 그려 SNS에서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을 그려 SNS에 올렸는데, 선수들이 잇달아 직접 작품을 공유했다.
“해외에 나가 있다 보니 더 애착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K팝, 한복, 사극 드라마 등을 다양하게 보며 영감을 얻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요즘엔 Mnet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댄서들 영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로서 많은 분을 세계에 소개하고 이렇게 멋진 나라가 있다는 걸 적극 알리고 싶습니다.”
글=김희경/사진=신경훈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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