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폭탄은 ‘핵폭탄의 제왕’으로 불린다. 이론상에 머물던 수소폭탄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실제로 개발한 인물은 헝가리 출신 미국 과학자 에드워드 텔러다. 텔러는 미국의 핵폭탄 개발 사업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학자 스태니슬로 울람과 함께 수소폭탄을 설계했다.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할 때 다수 핵폭탄을 기폭제로 쓰면 수소폭탄이 된다는 ‘텔러-울람’ 이론을 창안했다. 1952년 11월 이 이론에 따라 태평양에서 미국이 터뜨린 수소폭탄의 살상력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450배에 달했다. 70년 전 개발된 이 수소폭탄을 한 발만 떨어뜨려도 한국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 지도에서 사라진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은 수소폭탄을 보유하고 있다.
텔러는 이 밖에도 ‘얀-텔러 효과’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분자·원자들이 정다면체 등 대칭적으로 배열돼 있을 때, 전자가 위치를 스스로 바꿔 분자 전체 모양을 비대칭 상태로 바꾸는 속성을 말한다. 대칭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많이 드니까 좀 더 편한 곳(낮은 에너지 준위)으로 내려가려는 ‘전자의 본능’인 셈이다. 얀-텔러 뒤틀림, 자발적 대칭 깨짐 현상이라고도 한다.
얀-텔러 효과는 2차전지에서도 관건이다. 수년 전만 해도 2차전지 양극재로 리튬망간산화물(LMO)을 많이 썼는데 이는 얀-텔러 효과가 심했다. 그래서 개발된 게 현재 주로 쓰이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계열 양극재다. 테슬라가 눈을 돌린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양극재도 얀-텔러 효과가 거의 없다.
나트륨 전지는 리튬이온 전지의 리튬을 싸고 풍부한 나트륨으로 대체한 차세대 2차전지다. 나트륨 전지의 양극재는 망간이 포함된 페로사이안화철이 유용하다. 페로사이안화철 화합물(일명 프러시안블루)은 청바지 등의 염료로 쓰인다. 프러시안블루 망간 화합물은 구조가 안정적이고 이온 통로가 넓은 데다 용량도 크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얀-텔러 효과를 역시 피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이현욱 UNIST(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싱가포르 난양공대와 함께 프러시안블루 망간 화합물의 얀-텔러 효과를 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팀은 유기 저농도 전해질과 수계 고농도 전해질 두 가지 환경에서 충·방전을 반복하며 얀-텔러 효과 양상을 대조 분석했다. ‘꿈의 현미경’이라고 불리는 경북 포항방사광가속기 시설을 활용했다. 그 결과 수계 고농도 전해질에서 얀-텔러 효과를 제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교수는 “과거엔 얀-텔러 효과를 피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어렵다고 여겨졌지만 최근엔 기술 축적으로 이 효과를 없애는 다양한 연구가 2차전지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사업 지원을 받은 이 논문은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펑셔널 머티리얼즈’에 실렸다.
이 교수는 앞서 리튬이온 전지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도 난양공대와 함께 개발했다. NCM 양극재에서 이온이 흘러나와 분리막과 섞이면 수명이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분리막에 프러시안블루를 코팅하면 수명을 30% 가까이 늘릴 수 있다는 연구 성과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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