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법원과 검찰 정기인사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권 말기 정기인사는 변화보다 안정을 줍니다. 다음 정권으로 공을 넘겨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무리하게 인사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도 피해야 한다는 계산도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법원, 검찰 인사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인사를 전후에 여러 논란을 낳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는 법관과 검찰의 ‘서초동 엑소더스(대탈출)’로 귀결됐습니다. 이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형로펌으로 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연구관은 대형로펌으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만 퇴직 3년 이내에 연 매출 100억원 이상 로펌에 갈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유학을 떠나는 재판연구관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 휴직을 고려해봄직도 하지만 미련없이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습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법원의 사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에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건 아닌가”, “정권이 교체될 경우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 정확한 이유는 사표를 던진 본인들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행정법원은 말 그대로 정부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방역패스 집행정치 신청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에 ‘코드인사’를 한다면 향후 법원의 중립성, 객관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장낙원 부장판사는 노무현 정부시절 청와대에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간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습니다. 전주지법원장으로 임명된 오재성 부장판사 역시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입니다.
이번 법원 인사에서도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요. 인사를 앞두고 고등법원 판사 1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이례적으로 많은 규모라 합니다. 재판연구관과 함께 판사들도 엑소더스 행렬에 동참한 모양새 입니다.
하지만 박 차장검사와 박은정 성남지청장의 의견이 달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 지청장은 2020년 이른바 ‘추-윤 갈등’ 상황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주도해 친정부 성향 검사로 분류됩니다.
논란이 불거지자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는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성남지청은 성남지청 수사과 수사기록과 경찰 수사기록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검토 중이며, 수사종결을 지시하였다거나 보완수사요구를 막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파장이 가라앉지 않자 김오수 검찰총장이 신성식 수원지검장에게 경위 파악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성식 수원지검장 역시 친정권 성향 검사로 분류되는 인물입니다.
음력 새해를 앞두고 서초동에서 벌어진 엑소더스의 몇몇 장면들입니다. 그동안 법원과 검찰은 ‘국민의 뜻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갖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국민’이 법원과 검찰을 신뢰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앞섭니다. 과연 그들이 말한 국민은 어떤 국민이었을까요. 적어도 탈출을 감행한 이들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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