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기업 하이트진로가 2018년부터 지금까지 투자한 스타트업은 14개에 이른다. 초반 잠깐의 ‘외도’ 정도로 여겨졌던 스타트업 투자는 시간이 갈수록 다양화하면서 속도까지 더하고 있다. 1924년 창립(진천양조상회) 이후 98년간 ‘주류 외길’을 걸어온 하이트진로가 새로운 먹거리 탐색을 위한 씨앗 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배경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2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더벤처스와 손잡고 2018년부터 스타트업 발굴 및 육성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14개 초기 스타트업에 지분을 투자했다. 초기 투자여서 회사별 평균 투자금액은 5억원 안팎이지만 산업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스마트팜 솔루션 기업 ‘퍼밋’과 푸드 플랫폼 기업 ‘식탁이있는삶’ 등 식품 관련 스타트업은 물론 지식재산(IP) 커머스 플랫폼 기업 ‘옴니아트’와 브랜드 개발 기업 ‘슈퍼블릭’ 등 본업과 큰 관련이 없는 스타트업 중에서도 가능성을 보이는 곳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스타트업 투자는 신사업개발팀의 허재균 상무가 이끌고 있다. 허 상무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공격적인 투자의 목적으로 신사업 진출을 꼽았다. 그는 “주류 사업은 좁은 시장 안에서 서로 점유율을 뺏고 빼앗기는 구조라 성장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고, 가능성이 보이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하이트진로의 영업 실적은 한계에 봉착해 최근 10년간 제자리걸음 중이다. 2012년 처음 매출 2조원 문턱을 넘어선 뒤로 6년간 2조원 벽에 갇혔다. 2018년 매출이 1조8000억원대로 밀려났다가 신제품 ‘테라’와 ‘진로이즈백’의 흥행으로 2019년부터 다시 ‘2조 클럽’에 복귀했지만 개선폭은 지지부진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면서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은 1조658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397억원) 대비 4.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404억원으로 19.6% 줄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은 2조2500억원을 기록한 2020년에 못 미쳤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글로벌 산업계 이슈로 떠오른 메타버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메타버스를 주류산업과 동떨어진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하이트진로의 생각은 다르다. 허 상무는 “주류는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상품”이라며 “소비자가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주류업체도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대적으로 높은 부채비율 등은 공격적인 투자 행보에 걸림돌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하이트진로의 부채 비율은 211.39%에 달한다. 유보율은 218.07%로 대규모 투자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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