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퍼필드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영국 조정 박물관 등 30여 년간 주로 전 세계 주거 상업시설 및 공공 문화예술 건축물을 디자인해 왔다. 이 때문에 그가 설계한 대다수 건물엔 심미성(審美性)이 녹아 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에도 하나의 거대 조각품 같은 이미지를 담아냈다.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서울 도심 속에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특이성(singularity)’이 담긴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고층 빌딩이 많은 곳에서 도시 전경에 이바지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며 “복잡한 형태에서 단순해지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국의 미를 나타내는 달항아리 백자를 건축 콘셉트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루프가든은 이 중정 공간에 조성된 세 개의 정원이다. 자연통풍과 채광을 최대화하고자 중정을 중심으로 건물 비율을 세밀하게 조정해 탄생시켰다. 5층과 11층, 17층에 마련됐다. 5~6개 층을 비워낸 독특한 구조 덕분에 건물 어느 곳에 있더라도 언제든 도시와 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쉴 수 있다. ↘
건물 외관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역시 자연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햇빛을 차단하는 나무 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유선형의 수직 알루미늄 핀을 외관에 설치했다. 이 핀은 직사광선으로 인한 눈부심을 막아주고 열기를 감소시킨다. 특히 자연 채광을 실내 공간에 골고루 확산시켜준다. 핀들을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얗고 긴 자작나무가 심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핀들이 강렬하면서도 개방적이고 날렵한 인상을 부여해 건물에 일관된 표정을 만든다.
루프가든은 건물 규모를 가늠하게 하는 동시에 건물 주변을 둘러싼 공원 속 자연이 건물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게 한다. 치퍼필드는 “공중공원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공기 순환이 가능한 자연 공간”이라며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는 공간으로 사무 공간 이상의 것을 추구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말했다.
출입 공간에 설치된 공공 아트리움 역시 건물 전체를 도시로 환원하는 역할을 한다. 또 사옥 안에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도서관, 대강당, 오설록 티 룸, 상점과 같은 다양한 공공시설이 어우러져 있다. 기업 사옥이 본연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소화하는 것을 넘어 사회와 연결돼 대도시에서 수행할 수 있는 공공적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본사는 2018년 제2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대상과 제9회 대한민국 조경문화대상 정원 부분 대상을, 2019년엔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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