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0년경 어느 따뜻한 봄날. 프랑스 오빌리에 수도원의 술 저장고를 담당하던 수도사 돔 페리뇽은 술 창고에서 깨진 와인 한 병을 발견했다. 거품과 함께 흘러나온 술을 호기심에 핥아본 그는 절묘한 맛에 깜짝 놀랐다. “마치 하늘의 별을 마시는 것 같소.” ‘샴페인’이라고 불리게 되는 발포 와인이 탄생한 순간이다.
겨울의 추위가 만들어낸 기적의 발포주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는 와인을 가을에 주조했다. 추운 겨울 동안 발효가 정지되고 운 좋게 조건이 맞으면 봄에 다시 발효를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온 수도사가 물통 뚜껑으로 통기성이 좋은 코르크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낀 페리뇽은 기존에 쓰던 덮개 대신 코르크로 와인 뚜껑을 바꿔놓았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자 와인에 탄산가스가 생겼다. 딱딱한 코르크로 단단히 막았던 까닭에 병은 파열됐다. 반짝이는 별과 같은 와인은 이렇게 만들어졌다.이후 봄이 되면 샹파뉴 지방 지하 와인 저장고에서는 여기저기 와인 병이 폭발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농부들은 이를 ‘악마의 술’이라며 기겁했다. 하지만 페리뇽은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병이 파열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발포 와인을 계속 만들었다. 병이 깨지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은 비율이 60%였다고 하니 손실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술 제조법이었다.
18세기 샴페인은 사교계의 와인이었다. 주로 왕실, 귀족 사회에서 소비됐다. 비싸고 귀한 와인으로 병당 가격이 당시 고급 와인의 2~3배에 달했다. 근대 샴페인이 등장한 건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이전까지 샴페인은 발효 시 발생하는 앙금을 제거할 방법이 없어 잘 가라앉힌 다음 살살 따라 마셨다. 이 문제를 해결한 주인공은 세계 3대 샴페인 하우스 가운데 하나인 뵈브 클리코다.
뵈브 클리코는 발효 시 발생하는 앙금을 제거하는 ‘르뮈아주’와 ‘데고르주망’ 기술을 개발했다. 르뮈아주는 병을 아주 미세하게 회전시켜 발효 앙금을 병목으로 모으는 과정이다. 데고르주망은 병목을 영하의 찬물에 담궈 급속 냉각시킨 후 병마개를 열어 병 안의 가스에 의해 생긴 압력으로 병목에 모인 찌꺼기가 튀어나오게 하는 기술이다.
제조연도 표시된 빈티지 샴페인은 10% 불과
샴페인은 와인의 일종이다. 와인은 거품 유무에 따라 ‘스틸 와인(still wine)’과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으로 나뉜다. 스파클링 와인 중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병속 2차 발효를 거쳐 생산되는 것이 샴페인이다. 샴페인이란 명칭은 유럽연합의 원산지 명칭 보호법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에는 사용할 수 없다.프랑스 샹파뉴 지역 이외에 부르고뉴, 알자스에서 샴페인 방식으로 만드는 발포성 와인은 ‘크레망’이다. 독일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은 ‘젝트’, 이탈리아산은 ‘프란차코르타’ ‘스푸만테’ ‘프리잔테’, 스페인산은 ‘카바’, 미국·호주산 등은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부른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온화한 샹파뉴는 양질의 포도를 얻기가 힘든 곳이다. 수확한 포도의 질이 뛰어난 해에만 그해 수확된 포도로 샴페인을 만드는데 이를 ‘빈티지(Vintage) 샴페인’이라고 한다. 빈티지 샴페인은 전체 샴페인의 10%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첨단기술과 장비가 동원돼도 빈티지 와인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해당 연도의 햇빛과 바람, 비와 서리 등 하늘의 상황이다. 진정 ‘하늘이 내린 신의 물방울’인 셈이다. 나머지 90%는 ‘논 빈티지(Non-vintage)’ 샴페인이다. 논 빈티지 샴페인은 여러 해의 와인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연도를 표시하지 않는다.
샴페인은 당도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브륏 네이처(Brut nature·드라이한 맛이 강함), 브륏(Brut·약간 드라이하고 단맛이 전혀 없음), 엑스트라 드라이(Extra Dry·약간의 단맛과 약간의 드라이함), 섹(Sec·단맛), 데미 섹(Demi Sec·단맛이 Sec보다 진함), 두(Doux·단맛이 진함) 총 6단계다.
샴페인은 대부분의 음식과 잘 어울린다. 연어·새우·생선 등 해산물,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제외한 파스타, 닭·돼지고기 등은 물론 치즈와도 조화롭다. 다만 단맛의 디저트는 당도가 높은 샴페인과 먹는 게 좋다. 디저트와 함께 드라이한 브륏 샴페인을 마시면 샴페인의 쓴맛이 단맛과 상반돼 어울리지 않는다. 신선한 과일엔 적당한 단맛이 있는 데미 섹 샴페인을 곁들이기를 추천한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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