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을 때 여러 가지를 기대하게 된다. 특히 장편소설이라면 더욱 더 많은 걸 얻고 싶어한다. 《코리안 티처》는 그런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는 소설이다. 외국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에 대해 알 수 있고, 직장을 얻기 힘든 사회에서 고학력 여성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간접 경험도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제각각의 목적을 갖고 유학 온 학생들을 만날 수 있으며 나쁜 의도와 허술한 기획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목격할 수 있다. 외국인에게 제대로 가르치려는 강사들의 ‘한글 연구’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우리 글의 강점과 맹점을 대하는 것도 큰 소득이다.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코리안 티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서수진 작가의 약력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딱 두 줄뿐이지만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아도 ‘한국어학당 강사로 일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마지막장 작가의 말에서 ‘살아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것, 버텨내는 것, 끝내 살아남는 것’이라고 밝힌 서수진 작가는 코로나19 사태로 강의가 중단돼 실직 상태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네 명의 한국어 강사 선이, 미주, 가은, 한희가 소설 속 주인공이다. 1부에 등장하는 선이는 어학당 채용 합격 문자를 받고 80만원짜리 카멜색 핸드메이드 코트를 마련할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한다. 베트남 학생반을 맡은 선이는 진심을 다해 학생들을 대한다. 재계약까지 염두에 두고 열심히 가르치지만 몰래 찍은 선이의 사진을 학생이 SNS에 게시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면서 뭔가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2부의 주인공 미주는 8년째 H어학당에서 강의하는 베테랑이다. 학생들과 구분이 안 가는 슬랙스에 단화 차림이지만 할 말은 하는 소신파이기도 하다. 깐깐하게 가르치고 공부 안 하는 학생은 가차없이 유급시키는 바람에 강의평가가 늘 바닥이라는 게 걸림돌이다. 실력으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게 정답이지만 어디나 변수가 존재한다.
3부의 가은은 어학당의 여신이다. 아름다운 외모에다 학생들과의 친밀도가 최고여서 강의평가 1등을 놓치지 않는다. 당연히 시기 질투가 따를 테고, 접근하는 남학생도 있을 테고, 이런 짐작이 다 들어맞는다. 이상한 메시지를 받고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을 때 문자 신호음이 다급하게 울린다. 적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허탈해지고 만다.
4부를 장식하는 한희, 부지런하고 유능한 그는 임신 중이다. 몇 달째 월급을 못 받은 유치원 영어강사 제이콥과 함께 사는 그는 그야말로 전쟁같은 일상을 보내며 죽자사자 일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 왜 요즘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지, 왜 출산율이 낮은지 한희의 일상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소설 속 네 주인공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 노력은 대학 당국의 원칙 없는 비도덕적 행태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비록 좌절을 맛봤지만 열정적으로 일한 경험과 그로 인해 쌓인 실력은 그들의 인생에 큰 힘이 될 게 분명하다. 구체적이면서 실감나는 이야기를 읽으며 일과 사랑, 불의와 차별까지 다양한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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