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에 기술 한계 봉착한 中…"그래도 반도체 굴기 포기 안해" [박신영의 일렉트로맨]

입력 2022-02-05 21:00  


"중국의 반도체 굴기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vs "아니다. 반도체 기술발전 속도가 느려졌을 뿐이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가 길어지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에서 기술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이상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직 실패라고 단정짓기엔 이르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전세계 국가 가운데 반도체 인력 양성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여전히 반도체 자급률을 올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 한계"
지난 3일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소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미 간 과학기술 디커플링 이후 양국이 모두 타격을 입었지만, 중국의 대가가 더 컸다"며 "중국의 IT 산업이 한계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과학기술 디커플링 전략이 중국의 선진 기술 확보와 인재 유치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은 디커플링 이후 기술이나 산업 등 대부분 분야에서 현저하게 (발전이) 뒤처질 뿐 아니라 기술 '진공상태'에 빠졌다"며 "특히 반도체 제조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은 반도체 부문의 미세공정 기술 도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세공정에 필요한 필수 장비 수입이 가로막혀서다. 반도체 회로 선폭이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수준에서 7㎚ 및 5㎚ 최첨단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EUV 장비가 필요하다. EUV는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광원으로 활용해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노광 기술이다. 전세계에서 EUV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네덜라드 회사 ASML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해 ASML이 중국에 대한 EUV 장비 수출을 보류하도록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현재 중국 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는 비교적 저사양인 PC용 메모리 반도체와 아날로그칩 등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인력 양성은 포기하지 않아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분석에 여전히 무게가 실린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강한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리스크와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에서 반도체 대학이 경쟁적으로 설립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선임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11월 난징반도체 대학을 개교했다. 난징반도체 대학은 집적회로설계자동화대학, 마이크로전자대학, 집적회로 현대산업대학, 집적회로 국제 대학, 집적회로 미래기술대학 등 5개 단과대학을 갖추고 인력양성 및 프로젝트를 운용하고 있다. 2021년 4월 중국 최고 명문 칭화대가 반도체 대학을 개설했다. 같은해 6월에는 중국 선전시에 위치한 신흥 명문대학인 선전기술대학(SZTU)도 반도체 단과대학을 신설했다. 7월엔 베이징 대학도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반도체 대학원을 개원했다. 항저우과학기술대(HUST)도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인재백서의 내용도 전했다. 이 백서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전문인력이 2022년에 20만 명 부족하고, 2025년에 30만 명 부족하다. 이에 따라 2021년 3월 중국 국무원 학위위원회에서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며 반도체(직접회로) 학과를 기존 전자과학기술학과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학과로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량도 증가
중국 내 반도체 생산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달 공개한 산업생산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중국 내 반도체 집적회로(IC) 생산량은 3594억개로 전년보다 33.3% 증가했다. 전년도 증가율은 16.2%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반도체 자급률을 올리기 위해 중국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외국 기업들의 생산량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5%에 미치지 못했던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이미 20% 수준까지 올라왔을 정도다. 여기에는 중국 기업과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이 모두 포함되기는 하지만 중국 당국의 반도체 자급 노력이 생산량 급증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공식 통계는 반도체 자급을 추진하는 가운데 생산량을 늘리려는 중국의 노력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중국 칭화유니 자회사 YMTC는 최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YMTC의 낸드 사업 매출은 4억6500만달러(약 5521억원)로, 1년 만에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YMTC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1% 이하였지만 지난해 3분기에는 2.5%를 기록했다. 연간 점유율로는 인텔 다음으로 7위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SMIC가 14㎚ 공정을 이미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 반도체 기술력을 무시하기 힘든 대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기술·장비 도입 제재로 30㎚ 이상 숙련 공정 생산라인에 눈을 돌리고 있긴 하다"며 "하지만 꾸준한 인재 양성과 정부 차원의 집중적인 세제 지원 등이 지속된다면 속도가 더디더라도 기술 발전을 이룰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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