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절치부심 현대차의 일본 열도 재공략

입력 2022-02-05 16:05  


 -까다로운 시장 진출로 제품 경험 축적

 현대자동차가 일본 시장에 진출한 때는 2001년이다. 현대차 역사 자체가 일본차 도입으로 시작됐지만 글로벌 곳곳에서 일본차의 경쟁자로 떠오르자 일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른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자신감이 배경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아반떼XD, 클릭, 쏘나타, 그랜저 등을 앞세운 첫해 성적은 1,109대로 미미했지만 이듬해 2,424대로 대폭 늘어 현대차의 자신감을 입증했다. 

 그러나 기쁨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003년과 2004년은 각각 2,426대와 2,531대로 평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그 이후 매년 내리막을 걸었다. 2005년에는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 내 엄청난 인기를 얻은 배우 배용준 씨를 쏘나타 광고에 기용하며 반등을 노렸지만 허사였다. 배용준 씨의 주력 팬층은 30~50대 주부여서 중형 세단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이다. 차라리 소형차 클릭 광고에 등장했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얻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 배경이다. 결국  2009년 철수를 결정할 때까지 9년 간 실적은 고작 1만5,000대에 머물렀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2022년, 현대차가 다시 일본 열도에 진출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무리한 결정이라는 시각도 나오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일본 내 수입차 인기가 높지 않아서다. 흔히 일본은 수입차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소비자들의 수입차 선호도가 낮다. 쟁쟁한 일본 기업의 제품력이 매우 탄탄한 데다 도로와 주차장이 좁아 중대형 제품 위주의 수입차는 운행 자체도 쉽지 않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일본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25만6,000대로 한국의 27만4,800대보다 적다. 내수 시장은 460만대로 한국의 2.5배에 달하지만 수입차는 오히려 한국이 인기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다시 진출해봐야 과거의 답습일 뿐이라는 게 비판적 시각의 배경이다. 

 -현대차 일본 재진출, 모빌리티 서비스 중심
 -전동화 전환에 소재, 기술 등의 선제적 대응 차원

 물론 과거 눈높이를 적용하면 그럴 수 있다. 도심 내 많은 기계식 주차장의 너비가 1,800㎜일 때 2005년 NF쏘나타 너비는 1,830㎜여서 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었고 가격은 혼다 어코드와 비슷했다. 그리고 일본 또한 수입차는 유럽산을 선호하는 마당에 일본에서 자동차를 배운 현대차가 일본에서, 일본차와 대등한 제품으로 여겨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일본 진출을 다시 결정한 배경은 단순한 자동차 판매가 아니라 또 다른 속내가 있는 탓이다. 먼저 일본은 연간 자동차 판매가 460만대(2020년 기준)에 달해 국가별로는 중국(2,531만대), 미국(1,488만대)에 이어 3위 규모다. 하지만 세계 3위는 재진출의 명분일 뿐 이면에는 일본 시장 규모가 점차 줄어드는 점을 주목했다. 현대차가 철수한 2009년 일본 내수는 580만대에 달했지만 해마다 줄어 이제는 450만대 가량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수요층 감소와 굳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으려는 젊은 소비층의 욕구가 맞물려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는 일본에서 자동차를 구독형으로 빌려주는 사업성이 발견됐다는 것이고 현대차는 판매 중심이 아닌 대여 중심의 사업으로 진출을 결정했다. 그래서 일본 법인명도 '현대자동차'가 아니라 '현대모빌리티저팬'으로 정했다. 

 그리고 구독형에 투입되는 차종에서 내연기관은 일절 배제키로 했다. 내연기관은 투입해봐야 일본 소비자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탓이다. 토요타와 혼다 등이 쟁쟁한 곳에서 같은 내연기관은 그야말로 과거의 답습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진출 차종으로 아이오닉5와 넥쏘 등의 친환경차를 한정한 것도 구독 서비스 투입을 염두에 둔 전략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자동차제조 또는 대여기업의 지렛대일 뿐 정작 현대차가 노리는 것은 일본 시장의 친환경 기술 트렌드 파악에 숨어 있다. 전동화 과정에서 다양한 원천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데 일본에서 친환경차 모빌리티 사업을 수행하면 소비자 이용 데이터는 물론 연관 기업들의 움직임까지 파악해 소재와 부품, 배터리 등 여러 분야에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따라서 단순히 자동차 판매에만 시선을 맞추면 진출하지 않는 게 낫다는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일본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와 수소차의 최대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어 일본 재진출이 결정됐다. 이를 두고 얼마 전 현대차 고위 임원이 들려준 얘기가 인상적이다. "현대차는 내연기관차를 일본에서 배워 이제 대등한 수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친환경차는 다릅니다. 오히려 현대차가 앞설 수 있는 미래 비전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일본은 친환경차 부문의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어떤 준비를 하는지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현대차의 일본 열도 재진출의 진짜 배경이다.  

 권용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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