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을 앓는 고양이를 위한 첫 번째 항체 치료제가 개발됐다. 지난달 13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시판 허가를 받은 조에티스의 솔렌시아다. 지난해 유럽 시장에 이어 올해 하반기 미국에 출시되는 솔렌시아는 나이 들어 활동량이 감소한 고양이들의 관절염 통증을 줄여준다. 약을 뱉어내는 고양이를 배려해 주사제로 개발했다.
반려동물용 항체 치료제 시장을 연 기업은 세계 1위 동물의약품 회사 조에티스다. 2020년 1월 취임한 크리스틴 펙 최고경영자(CEO·49)가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난관도 있었다. 취임 두 달 만에 코로나19 유행으로 위기를 맞았다. 세계 곳곳에서 연구개발(R&D) 일정이 늦어졌다. 수의사들이 동물을 마주하기 어려워져 진료는 물론 임상시험까지 중단됐다. 약을 실어나르는 물류 시스템마저 무너졌다. 하지만 펙 CEO는 좌절하지 않았다. 현장 판단력을 믿고 맡기며 소통을 강화하는 ‘위기 극복’ 리더십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조에티스를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승자의 반열에 올려놨다는 평가가 나온다.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미국에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었다. 미 반려동물산업협회(APPA)에 따르면 2020년 미국 가정의 70%가 한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을 키웠다. 반려동물을 위한 씀씀이도 커졌다. 2005년 360억달러였던 반려동물 관련 상품 지출은 2020년 1036억달러로 급증했다. 지난해 추정 지출액은 1096억달러다.
시장 성장을 이끈 것은 동물용 의약품이다. 반려동물 수명이 길어진 데다 나이 든 반려동물을 끝까지 치료하며 함께하길 원하는 보호자가 늘었다. 수의계에선 일반적으로 11살이 넘은 개를 노령견으로 본다. 노령견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혈액이나 대변 검사를 하면 추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확인된다. 펙 CEO는 “유연근무가 활성화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것”이라고 했다. 조에티스가 팬데믹 수혜 기업으로 꼽히는 이유다.
모든 직원이 공통으로 지켜야 하는 ‘가이드북’부터 없앴다. 대신 각 지역 담당자들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직원과의 소통은 온라인 메신저 등을 통해 늘렸다. 팬데믹 후 사내 인트라넷에 그가 가장 먼저 올린 글의 주제는 ‘매출이나 실적’이 아니라 ‘경청’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를 취합해 효율적 의사결정을 하는 데도 집중했다. 지역별 상황은 어떤지, 수의사 방문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분석하며 추세를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반려동물을 위한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했다.
노력은 실적으로 확인됐다. 수의사가 이메일 등으로 처방전을 보내주는 조에티스의 원격진료 서비스 이용량은 코로나19 유행 기간 70% 증가했다. 2020년 매출은 66억달러를 넘었다.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전년보다 16% 증가한 77억4000만달러다. 작년에는 분기마다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보고했다. 1년간 주가 상승률은 S&P500 기업 평균 증가율(26.89%)을 뛰어넘은 47.45%였다.
조지타운대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한 그는 학창 시절 에콰도르 아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며 기업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펙 CEO는 “일자리를 창출할 만큼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미래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그것이 사업으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길을 택한 이유”라고 했다.
그는 다섯 번의 유산과 난임 치료 끝에 두 아이를 낳았다. 좌절과 희망을 반복한 경험을 담은 책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의 저자다.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그는 늘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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