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업체서 세금 1조 이상 더 걷고도…정부 "받으려면 소송하라"

입력 2022-02-06 18:04   수정 2022-02-07 01:59


식품을 수입하는 A사는 2014년 6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수입품에 대해 품목번호를 잘못 기재했다. 이 과정에서 과소 신고된 물품 수입 대금을 2019년 3월 정정하는 과정에서 1억47만원의 추가 관세와 3077만원의 가산세를 납부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수입 대금 증가의 반대 급부로 줄어든 부가가치세를 환급받기 위해 관세청에 수정 수입세금계산서 발급을 요구했지만 막혔다. A사는 이후 조세불복 소송 끝에 부가세 1004만원을 환급받았다.
황당한 관세 행정
A사 관계자는 “당연히 돌려받아야 할 세금임에도 수백만원의 소송비용과 1년여의 시간을 들인 끝에야 환급받을 수 있었다”며 “신고 착오에 따른 대가는 이미 추가 관세와 가산세 납부로 치렀음에도 이중처벌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2013년 이전까지 관세청은 원하는 기업에 수정 수입세금계산서를 발부했다. 하지만 2013년 7월 부가세법 개정으로 수정 수입세금계산서 미발급 제도가 도입됐다. 수입 물품의 과표를 낮게 신고해 관세 부담을 줄인 수입업자에게는 수정 수입세금계산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슬로건 아래 탈세를 줄이겠다는 것이 취지였다.

하지만 A사처럼 착오로 관세를 잘못 신고한 기업들까지 부가세를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관세사업계 관계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인 관세사도 세금을 잘못 신고하는 사례가 나타날 정도로 관세제도는 복잡하다”며 “조세불복 소송까지 가면 대부분 수입업체 측이 승리하는 등 수정 수입세금계산서 미발급 제도의 불합리성은 광범위하게 인정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2020년 관련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정부가 무역업체 등의 관세 고의 탈루 의도를 입증하지 못하면 수정 수입세금계산서를 모두 발급해주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기재부는 “관세를 축소 신고하면 가산세 부과를 하는 상황에서 이중처벌이 되고, 해외에 유사 제도 시행 전례도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석연치 않은 관세청의 반대
이 같은 기재부 안은 정부 안으로 확정돼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쳤지만 2020년 11월 국회 기재위 조세소위원회에서 막혔다. 당시 소위에 참석한 관세청 관계자가 “일선 세관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못했고, 법 개정이 무역업체들의 관세 성실 신고 의지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며 반대한 것이다. 기재부와 관세청 관계자가 언쟁을 벌이는 가운데 김용범 당시 기재부 2차관이 의원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내의 의견 조정은 국무회의 의결로 마무리된다고 봐야 한다”며 “이미 정부 안으로 확정된 사안에 청 단위 정부 조직이 반발해 입법이 좌절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관련 제도가 잘못됐다고 하는데 관세청이 제도 개선에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마치 주택 보유세나 양도세 신고를 제대로 시키겠다며 납세자가 잘못 납부한 세금도 돌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지난해에는 기재부와 관세청 사이의 이견을 재차 조율한 뒤 2020년과 동일한 부가세 개정안을 조세소위에 상정했다. 이번에는 관세청도 적극 동의했지만 일부 의원이 “관세청이 1년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했다. 관세청과 일부 국회의원이 제도 개선에 반대하는 것과 관련, 일각에선 소송을 바라는 로펌이 배경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내놓고 있다. “조세불복과 관련된 수임료를 챙길 수 있는 법조계로선 미발급 제도가 유지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정부는 올해도 다시 법 개정을 시도한다는 계획이지만 5월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전반적인 경제 정책이 바뀔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관계자는 “수정 수입세금계산서 발급 제한에 따른 억울한 피해가 기업들에 발생하지 않도록 법 개정 이전에도 시행 가능한 추가 보완책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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