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한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 노벨상 꿈꾸던 문학소녀…277만 女기업인 대변자로

입력 2022-02-07 17:27   수정 2022-02-08 00:01


“강판 성형은 흔히들 ‘쇳밥을 먹는다’고 불리는 업종입니다. 여자 사장을 보기 무척 힘들지요. 경쟁업체에 은근히 무시당하는 일도 많았어요. 그때마다 다짐한 것은 ‘좋은 품질’이었습니다. 이제는 277만 여성 기업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창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정한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사진)는 ‘억척스런 기업인’으로 불린다. 27세 때 작은 철재상으로 시작해 금속 판재 유통·가공 분야에서 보기 드문 ‘여자 사장님’이 됐다. 회사가 쓰러질 위기에 처하자 트럭 운전·용접 등의 기술을 직원들에게 배워가며 재기했고, 한두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앞치마를 둘러매고 직접 직원들의 점심밥을 지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작은 가게에서 출발한 비와이인더스트리는 연매출 100억원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최근 또 다른 직함이 하나 생겼다. 지난달 국내 여성 기업인들을 대표하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에 취임한 것. 3년 임기를 시작한 이 대표를 최근 서울 역삼동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서 만났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여성이 경영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999년 여성기업법에 의거해 설립됐다. 여성 기업인의 창업 및 판로 개척, 경영자 교육 등을 지원한다. 협회에 가입한 기업 수는 5만7000여 개다.

최근 여성 기업인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일까. 이 대표는 “최근 만나본 여성 기업인 다수가 중대재해처벌법·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운영 기업의 대다수가 1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인 만큼 제도 시행에 따른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한국의 여성 운영 기업 수는 277만 개로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지만, 여전히 업력 5년 미만이 절반을 넘는 등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라며 “이러한 소규모 기업들의 목소리를 더욱 잘 대변할 수 있도록 ‘일반 회원’을 신설해 협회 가입 문턱을 낮출 계획”이라고 했다.

이 대표 스스로도 ‘작은 여성 기업’의 설움을 잘 안다고 말한다. 경기 안산의 작은 철재상부터 사업을 시작해 여러 번 회사가 쓰러질 위기를 넘겼다. 바쁜 경영 일정에 치이면서 아이들을 제때 돌보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어릴 적엔 노벨문학상을 동경하던 문학소녀였어요. 가세가 기울면서 고교 졸업 후 바로 생업 전선에 나섰고 사업까지 이어지게 됐죠. 매일같이 새벽에 출근하고 거래처에 수금하러 다니다 보니 아이들 돌보는 데 시간을 쏟지 못한 게 늘 미안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 기업인과 직장인들이 겪는 고충입니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한 시스템’이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운영 기업이 더욱 성장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이 대표는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키워주는 경영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선진 경영 사례를 벤치마킹할 기회를 늘리겠다는 게 이 대표의 목표다. 이 대표는 “대기업·공기업과 협력해 이들이 보유한 노하우와 장점을 습득하고, 그들이 가진 국내외 판로 인프라를 활용하는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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