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고품질 스피커의 대명사인 보스(Bose)는 스피커 브랜드명이자 기업명이며 기업 설립자 이름이기도 하다. 아마르 보스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1962년 교수로 재직하던 중 창업했다. 당시 고품질 스피커는 장인들이 수공업으로 개발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지만 보스는 음향학 이론과 전기전자 기술을 결합, 기술 기반의 고품격 스피커를 개발해 세상에 내놨다. 그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상당 기간 기업 대표를 겸하며 연구활동과 기업 운영을 함께 한 인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보스 교수의 음향학 이론 수업은 학과를 불문하고 창업을 꿈꾸는 MIT 학생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수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린파워의 조정구 대표와 보스 스피커사의 아마르 보스 대표 두 사람의 공통점은 기술 기반으로 창업해 각 산업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란 것이다. 학계가 인정한 발명가이자 기업가다.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투자 규모는 11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도 매년 그 규모를 경신해 올해는 무려 30조원에 이른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동시에 국가 기술 지원도 확대되면 당연히 기술 기반 창업도 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술 기반 창업이 증대했다는 뉴스는 접하지 못했다.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를 칭하는 유니콘 기업이 한국에 10여 개 있지만 대부분 유통이나 플랫폼 기업이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유니콘 기업은 아직 없다. 창업 정책과 국가 R&D 지원 정책이 상호 시너지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만하다. 특히 연구와 창업이란 두 공통분모를 함께 가진 기술 중심 대학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학의 핵심은 발명이다. 조 대표와 보스 대표는 모두 발명을 통한 창업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과대학에서 ‘발명’이란 단어는 사어가 된 지 오래다. 새로운 발명과 창조보다 해외 누군가가 개발한 기술을 분석하는 것이 연구활동의 대부분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개발하기보다 남의 것을 보고 비평하는 것이 대학교수 실적 평가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발명의 가치를 공유하고 교육하는 문화가 없는 한 R&D 투자와 창업, 신산업 창출의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학교 문화다. 아직까지 국내 대학들은 교수가 창업하면 연구는 뒷전이란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정말 창업하면 연구가 뒷전으로 밀릴까? 실상은 이와 반대다. 조 대표는 그린파워를 창업한 이후 학계를 떠났는데도 저명한 대학교수들도 초청받기 힘든 세계적인 학회에 기조연설자로 참여하는 등 학계에서 무선 전력을 상용화한 기술자로 추대받고 있다. 세계 전기전자 및 음향학 학회에서 보스 대표의 명성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기술 창업에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대의 기술 기반 발명의 가치와 이를 통한 기술 창업의 가치만 인정된다면 기술 창업 강국으로 떠오를 잠재력은 충분하다. 다만 문화를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대 과학기술대학(KAIST, GIST, UNIST, DGIST) 내 공대만이라도 발명과 기술 창업에 가치를 둔 교원 평가, 학생 교육의 대대적인 혁신을 시도하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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