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외쳤지만 사실 글 쓰는 게 다른 일에 비해 좀 더 재미있는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주장하며 유용한 점이 있었는데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진로에 대해 있어 보이게 말할 거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너는 나중에 어떤 일할 거야?"라는 질문에 드디어 대답할 수 있었다. “글 쓰는 일 하고 싶어요(뭔가 있는 척).”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며 대기업 공채에 합격했네, 공무원 시험 합격했네, 유학 가네 뭐네 하는 이야기로 학교가 시끌시끌했다. 그때도 나는 ‘다들 멋지네’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다 졸업을 한 달 정도 남겼을 때 번뜩 정신이 들어 이력서 양식을 찾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평소에 자주 쓰던 앱을 제작한 스타트업 채용 공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제출 며칠 후 서류 전형 합격 안내와 과제 요청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이거 진짠가 싶었다. 부랴부랴 학부 때도 잘 안 만들던 PPT를 만들었다. 이때만큼 구글링을 열심히 한 적이 없다. 과제를 제출하고 3일이 채 안 돼 1차 면접 보자는 메일을 받았다. ‘와 나 이러다 졸업하기 전에 취업하는 거 아닌지 몰라’하고 속으로 낄낄대기도 했다.
=낄낄대던 나 (이미지=백윤희 씨)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의 첫 취업 도전은 실패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과제와 면접은 그야말로 날 것인 사회 초년생의 것이었다. “어... 면접이 처음인데요. 안녕하세요...”가 끝인 이상한 자기소개로 시작해 과제 설명도 어버버하며 끝났다. 면접이 끝난 후엔 면접관 명함에 쓰여 있는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정말 감사했고 면접에서 못 보여드린 엄청난 역량은 입사 후에 보여드리겠다는 패기 넘치는 마무리였다. 하지만 면접관은 따스하게 답장해주었다. 이 덕에 탈락을 지속하면서도 계속 면접 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면접관님 사는 동안 많이 버세요).
여담이지만 이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이 스타트업과 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먼저 요청한 것이었다. 협업은 잘 마무리됐고 사실 대학생 때 이 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 이 회사는 분명 잘 될 테니 나중에 입사하든 같이 일하든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잘 나간다니 괜히 뿌듯하다고 말했다. 담당자와 재미있다며 하하 호호 웃었다. 하여튼 저 진격의 탈락 이후 면접 한 번을 보지 못한 3개월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백윤희 씨는 제품, 사람, 문화에 서사 만들어 붙이기를 좋아하는 직장인이다. [2호선 수필집]은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며 만나고 느낀 것들의 잔상이다. 그렇다고 2호선을 좋아하지는 않으며 극세사 이불에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한경잡앤조이에서 '텍스트 브이로거'를 추가 모집합니다>
코로나19로 단절된 현재를 살아가는 직장人, 스타트업人들의 직무와 일상에 연관된 글을 쓰실 텍스트 브이로거를 모십니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느꼈던 감사한 하루’,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의 치열한 몸부림’, ‘코로나19 격리일지’, ‘솔로 탈출기’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직접 경험한 사례나 공유하고픈 소소한 일상을 글로 풀어내시면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텍스트 브이로거 자세한 사항은 여기 클릭!>
khm@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