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배달 시장의 키를 쥐고 있는 곳은 쿠팡이츠다. 최근 진행된 배달 수수료 개편 과정이 이를 증명했다. 업계 3위인 쿠팡이츠가 단건 배달의 요금 체계를 선택제로 바꾸자 얼마 안 가 1위인 배달의민족이 뒤를 따랐다. 주요 배달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긴 하지만, 모바일인덱스가 일간 활성사용자수를 통해 추정한 ‘빅3’의 점유율은 배민 68.81%, 요기요 19.55%, 쿠팡이츠 11.64%다. 10%를 갓 넘긴 점유율로 3위 업체가 가격이라는 시장의 핵심 ‘룰’을 정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잠깐 2020년 12월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당시 배민은 요기요와 합병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독과점이라며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요기요 운영사인 딜리버리히어로에 배민의 새주인이 되려면 요기요 지분 100%를 매각하라고 강제했다. 10일 현재 요기요는 GS리테일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품에 안겨 있다. 당시 공정위는 배민과 요기요를 결합한 시장 점유율을 99.2%로 산출했다. 전년(2019년) 거래액을 기준으로 한 계산법이었다. 2019년에 배달 시장에 뛰어든 쿠팡이츠의 미래 경쟁력을 감안해서 점유율 계산을 했더라면 좀 더 합리적이었겠지만, 공정위로선 이미 나와 있는 숫자를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이 때까지만 해도 쿠팡이츠의 위력은 과소평가됐다.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이란 파격적인 수를 선보이며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 여러 집을 거쳐 오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빠르게 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는 소비자들을 빠르게 중독시켰다. 식당주들도 점차 단건배달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맛집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일수록 그랬다. 배달과 음식맛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기존 관념을 쿠팡이츠가 깬 것이다. 쿠팡이츠와 배민이 내놓은 배달요금 선택제는 단건배달이 시장의 대세가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배달수수료와 배달비를 합해 대략 배달요금이 7500원선(주문금액 2만원으로 가정)으로 정해진 것”이라며 “식당주인들도 이 정도 선에서 단건 배달의 공정 요금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체 배달 시장에서 단건 배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20%선이다. 수도권만 한정하면 수치가 30~40%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비수도권은 배민이 지배적인 사업자여서 아직 단건 배달의 비중이 적다. 식당주인들이 앞으로 어떤 요금제를 더 많이 선택할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식당주들로선 주문자가 부담해야할 배달팁을 높이기는 어렵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차라리 인플레이션 분위기에 합류해 음식값을 올려 받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쿠팡이츠는 약 2년 간의 배달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배민이 전체 주문 물량의 95% 가량을 생각대로, 바로고 등 배달대행업체에 위탁해 처리하고 있는데 비해 쿠팡이츠는 ‘배달 라이더’들을 크라우드 소싱으로 모집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장인, 주부, 대학생 등 오토바이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 쿠팡이츠의 배달 기사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요기요만 해도 ‘오운 드라이버’라는 전속 기사를 확장하는데 주력했지만, ‘알바’ 성격이 강한 배달맨들의 속성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쿠팡이츠는 전속과 대행도 아닌 제3의 길을 추구했는데, 이는 배달 기사들이 주문을 잡고, 어떻게 이동하며, 주로 어디에서 대기하는 지 등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목적이 컸다.
쿠팡이츠가 배달판을 흔들 또 다른 ‘한방’은 결국 데이터일 것이다. 쿠팡그룹은 늘 그래왔다. 손익구조를 생각하면 도저히 내놓을 수 없는 파격적인 상품으로 시장에 균열을 내고는, 출혈 경쟁으로 상대방을 지치게 한다. 그 다음엔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그로기 상태에 있는 경쟁자에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는 식이다. 이와 관련한 일화 하나. 지난해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 직전 날 밤의 일이다. 거래소에서 가까운 호텔에 묵고 있던 쿠팡 경영진은 식사를 도어대시로 주문해 해결했다. 매일 비싼 호텔밥을 먹을 수 없는 데다 색다른 현지 음식도 경험하고, 도어대시의 서비스를 평가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쿠팡의 경영진은 쿠팡이츠의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미국 1위라는 도어대시가 가져 온 피자는 식어빠진 데다 오기까지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배달 시장에서도 다시 한번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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