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제지 1000억 회사채 발행 연기…비우량기업은 年 9%도 감내

입력 2022-02-09 17:47   수정 2022-02-10 10:07

회사채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국내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의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시중 자금을 흡수하던 기업들은 이제 1년 전보다 두세 배 이상 높은 이자를 내줘야 할 상황이다. 비우량 기업들은 특히 비상이 걸렸다. 투자적격 최하단인 BBB- 등급 회사채 금리는 8년 만의 최고 수준인 연 9%에 근접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장기화로 영업실적 회복이 늦어지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마저 다음달 종료를 앞둔 상황이어서 재무안정성 유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요예측 미달·연기 잇따라

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회사채 시장에선 우량 기업마저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급식업체인 CJ프레시웨이(신용등급 A)와 전선업체 LS전선(A+) 등이 수요예측 과정에서 당초 예정한 모집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발행 계획을 아예 연기하는 회사들도 나오고 있다. 한솔제지(A)는 신용등급 A급 이하 회사채 투자심리가 얼어붙자 최근 1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 계획을 중단했다. 일부 건설사도 1분기 자금 조달을 완료하려던 계획을 미루고 있다.

한 증권사 회사채 발행 담당 임원은 “기관투자가들이 가파른 금리 상승에 따른 손실을 피하기 위해 투자를 주저하면서, 일부 코로나19 취약 업종과 비우량 기업의 자금줄이 마르고 있다”며 “발행을 준비 중인 A급 이하 기업 상당수는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고금리에도 발행을 강행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리 인상에 무너진 ‘연초효과’
다수의 회사채 시장 참여자는 앞으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차질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초에는 곳간을 채우기 위한 기관의 공격적 매수로 국고채 대비 회사채 인기가 많았으나, 올해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회사채 AA- 등급 3년물과 동일 만기 국고채 간 금리 격차를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는 올해 초 0.60%포인트에서 지난달 한때 0.56%포인트까지 축소됐으나 이후 다시 확대되는 추세다. 국고채보다 회사채를 매수하려는 수요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 우려 증대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스탠스, 추가경정예산 증액 전망 등이 맞물려 시장금리를 끌어올리면서 상대적으로 유동성에 더 취약한 회사채 투자심리를 빠르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예년의 연초효과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며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의 발행 물량이 역대급으로 쏟아진 가운데 대내외 시장금리 급등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결과”라고 설명했다.
투자적격 채권이 9% 육박
비우량 투자적격 최하단인 BBB- 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2014년 6월 후 8년 만에 연 9% 돌파를 바라보게 됐다. 채권평가사들에 따르면 BBB- 등급 3년물 평균 금리는 이날 기준 연 8.72%를 나타냈다. 작년 9월 이후로만 1.02%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국고채 3년물이 연 2.27%로 0.88%포인트 상승한 것과 비교할 때 빠른 속도다.

회사채 시장 전문가들은 다음달 정부의 코로나19발 금융기관 유동성 지원 정책 종료와 함께 회사채 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의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 완화와 예대율(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 잔액 비율) 적용 유예를 올 3월 말 끝낼 예정이다. 보험사의 유동성 평가 기준 한시적 완화와 여신전문금융사의 유동성 비율 한시적 적용 유예도 올 3월 말 종료될 예정이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관련 금융 지원이 3월을 기점으로 대부분 종료될 예정이라 고위험 업종의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올해 회사채 투자심리 악화로 신용등급별, 섹터별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태호/김은정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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