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지평 바꾸는 AI 기술의 진화

입력 2022-02-10 06:00  


이달은 세계인의 이목이 스포츠 경기에 집중되는 시기입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고, 오는 14일(한국시간)엔 미식축구 최대 경기인 제 56회 수퍼볼이 개최됩니다. 올림픽과 수퍼볼 모두 최근 인공지능(AI) 활용세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AI로 훈련 영상 분석
올림픽 공식 기록 측정을 담당하는 스위스 시계기업 오메가는 올림픽에 AI 기반 시간·동작 계측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 이미지 트래킹 카메라 여러대를 설치하고, 선수들은 센서를 착용하게 한 뒤 카메라와 센서로 모은 데이터를 조합해 AI가 특정 시간대 선수들의 동작과 위치를 실시간 분석하게 하는 식입니다.

오메가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선 피겨스케이팅과 스피드 스케이팅 등에 신기술을 도입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엔 동작 센서 기반 포지셔닝 감지 시스템을 새로 들였습니다. 경기장에 카메라 6개를 설치해 선수의 점프 높이, 비거리, 체공 시간 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포착·분석하는 기술입니다.

이를 통하면 선수와 코치진이 각 동작별로 중요한 추진력 포인트나 적절한 회전 속도 등을 따져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피겨 퀸’ 카밀라 발리예바가 구사하는 쿼드러플(4회전) 점프의 동작 비결까지 알아볼 수 있다는 게 오메가 측의 설명입니다.

각국 대표팀은 AI 기술을 활용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올리고 있습니다. 비전AI 기반 동작 분석으로 선수가 좀더 나은 자세를 잡게 하는 것부터 특정 동작을 연속해 보였을 때 예상 기록이 어떨지를 알아보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선수의 심박수, 체내 수분량, 혈류 등을 모니터링하기도 합니다. 코치진은 이 정보를 선수 개인별 훈련이나 식이요법에 활용합니다.
"선수 부상 막아라" AI 공모전
AI를 선수 부상 방지에 적극 활용하는 스포츠도 있습니다.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가 대표적입니다. 미식축구는 경기 중 선수간 몸싸움과 충돌이 잦은 것이 특징입니다. 헬멧 등 각종 보호장구를 착용해도 선수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선수들의 뇌 손상 우려가 큰데요. 매번 충돌 직후엔 별다른 증상이 없어도 선수 생활 10여년 뒤엔 외부 충격으로 인한 만성 뇌병증(CTE)이 나타나 치매 증상이나 언어장애, 우울증 등을 앓기 일쑤입니다. 2016년엔 은퇴한 미식축구 선수 4500명이 NFL에 뇌손상 위험을 제대로 관리·고지하지 않았다며 10억달러(약 1조 1960억원) 규모 소송을 벌여 승소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NFL은 최근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AI 기반 부상 방지 시스템 구축에 나섰습니다. NFL 경기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AI가 머신러닝을 통해 익히게 해 선수들의 디지털트윈(디지털 쌍둥이)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디지털트윈 모델에 선수들의 동작, 속도, 착용 장비, 경기장 위치, 주변 온도 등 각종 변수를 바꿔보면서 '무한 시뮬레이션'을 돌려 상황별 부상 경향성 등을 파악한다는 계획입니다.

NFL과 이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데이터 분석기업 바이오코어 관계자는 "특정 상황에서 왜 선수가 부상을 입는지 파악하면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NFL와 AWS는 지난달엔 AI 기반 부상 방지 솔루션을 찾기 위해 AI 모델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상금 10만달러(약 1억1960만원)가 걸린 이 대회엔 65개 국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등 100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공모전 1위는 부상자가 발생한 경기 장면을 각도·변수별로 자동 분석하는 AI 모델이 차지했습니다. 사람이 수동으로 데이터를 분석할 때보다 속도는 최대 83배 더 빠르고, 데이터 분석 정확도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기술 경쟁 공평한가" 논란도
AI의 한계점도 있습니다. 주요 스포츠 경기에 따르는 비과학적 변수까지 분석해 결과를 내놓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AI 모델에 최신 동작 감지 센서와 카메라 수십 대를 연동해 기록 계측을 한들 인간인 심판이 '석연치 않은 판정'을 내놓고 고집을 피운다면 AI의 쓰임새도 별 의미가 없어집니다.

경기 예측도 그렇습니다. 미국 30여 개 주에선 스포츠 도박이 합법이라 여러 기업이 미식축구 리그를 두고 AI 기반 승자 예측 서비스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들 AI 서비스 여럿이 리그 결승전 격인 수퍼볼 출전 팀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수퍼볼 출전 팀을 결정하는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신시내티 벵갈스가 캔자스시티 치프스를 제쳤기 때문입니다.

기존 데이터만으로는 AI가 치프스 승리를 점치는 게 논리에 맞았을 공산이 큽니다. 벵갈스는 31년만에 처음으로 수퍼볼 경기장을 밟아보는 팀으로 전년도 정규시즌 17전 4승에 그쳤습니다. 자체 실내 구장조차 없습니다. 반면 치프스는 작년까지 2년 연속 수퍼볼에 진출한 강팀입니다. 직전 정규시즌에선 17회 경기 중 딱 두 번 졌습니다.

하지만 당일 경기 결과는 데이터와 달랐습니다. 패트릭 마홈스 등 치프스의 주요 선수가 긴장을 이기지 못해 순간적인 전술 판단 실수를 한 등의 영향인데요. 이는 아직까지는 AI가 계산 범위에 넣기 어려운 일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스포츠에서 AI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부유한 팀이나 나라가 AI를 십분 활용해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그렇지 않은 쪽 선수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게 놔두는 것이 스포츠 정신에 맞는 일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딜로이트는 작년 보고서에서 이같은 논쟁을 소개하며 "스포츠 경기에서 AI의 공정성을 찾아야 한다"며 "앞으로는 올림픽위원회 등이 AI 기술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한결 IT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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