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투어·야놀자·여기어때…박터지는 여행 플랫폼 전쟁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2-02-28 09:29   수정 2022-02-28 09:43

“올해 해외에 나갈 의향이 있으세요?” 정명훈 여기어때 대표를 최근 만났다. 그의 물음은 심중을 짐작케 했다. 야놀자와 함께 여행 플랫폼 시장을 개척한 여기어때는 지난해 온라인투어에 투자하는 등 해외로 영역을 넓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정 대표에게 되물었다. “오미크론이 좀 잠잠해진다는 전제여야겠지만, 대표님은 어디 여행을 가고 싶으세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요. 아무래도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가까운 곳을 택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31조 해외여행 시장 누가 잡을까
코로나19 감염자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지만, 시장에선 벌써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31조원 규모의 해외여행 산업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글로벌 펜데믹으로 인해 약 2년 간 꽁꽁 묶여 있던 아웃바운드 여행이 재개될 경우 누가 승자가 될 것이냐는 여행 산업 뿐만 아니라 투자 업계에서도 주요 관심사다. 하나투어의 공동대표였던 김진국 대표가 최근 노랑풍선으로 옮긴 것은 여행산업계의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해외여행은 하나투어와 익스피디아 등 글로벌 OTA들이 양분하던 시장이었다. 패키지 여행에선 하나투어의 독주체제였다. ‘코로나 봉쇄’가 시장을 완전히 바꿔놨다. 야놀자, 여기어때 등 여행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국내 여행을 중심으로 사용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야놀자와 여기어때의 MAU(월간이용자수)는 각각 446만명, 338만명에 달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국내 여행 수요가 폭발하며 28일 현재 양대 여행 플랫폼의 MAU는 500만명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배달앱 2위인 요기요의 MAU가 1000만명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일상화된 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숙박 등 여행 관련 검색만으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괄목할만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행업계에선 하나투어, 야놀자, 여기어때의 신(新)삼국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각 IMM프라이빗에쿼티, 스카이레이크, CVC캐피털 등 사모펀드가 투자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전세계 객실을 야놀자 시스템으로 묶는다"
자금력 측면에선 야놀자가 가장 막강하다. 지난해 7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Ⅱ로부터 2조원을 투자받았다. 올 상반기 중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쿠팡의 글로벌 IPO를 성사시킨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야놀자를 통해 또 다시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정의 투자 방정식 제 1 원칙은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될만한 스타트업에만 투자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왕이 될 상(相)’이어야만 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야놀자 역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면 우선 한국 여행 산업에서 압도적인 지위에 올라서야 한다. 코로나19로 국내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야놀자는 ‘모텔 중개’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어느 정도 넘어섰다. 현재 야놀자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아웃바운드 여행 시장이다. 베트남, 인도 등에서 주요 숙박관리업체들을 인수한데 이어 최근 인터파크까지 품에 안았다.

야놀자의 야심은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객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것이다. 마치 객실을 거대 물류센터 선반 위의 상품처럼 만들어 전세계 여행자들의 수요와 연결시켜주겠다는 발상이다. 이 같은 야심찬 발상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숙박업이 몇몇 글로벌 호텔 마피아들이 독식하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메리어트, 힐튼, 하얏트 등 거대 호텔 사업자들은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형적인 공급자 우위의 시장을 만들어왔다. 이웅희 H2O 대표는 “호텔 마피아들은 산업 전반의 IT 혁신에도 불구하고, 기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혁신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쿠팡이 기존 택배사들의 공급자 위주 마인드를 뒤집으며 로켓배송이라는 신개념 상품을 만들어냈듯이, 야놀자에도 비슷한 기회가 찾아왔다는 의미다.
하나투어의 반격, 여기어때의 선택과 집중 전략에도 관심
하지만 야놀자의 꿈이 실제로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다. 자칫하면 야놀자는 최대의 딜레마에 처할 수도 있다. 막상 하늘길이 열렸는데 해외 시장 개척 속도가 더디고, 엎친데덮친 격으로 ‘안방’마저 경쟁자에 뺏길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치 삼국지에서 조조가 자신의 근거지인 중원을 놔두고 촉한을 공략하려는데 배후의 강동 세력이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겠다.

해외여행 시장은 패키지 여행의 강자인 하나투어가 시장 재탈환을 위해 만만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객실을 야놀자의 시스템으로 묶는다는 발상은 말은 쉽지만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야놀자와 여기어때가 국내에서 숙박업체들을 끌어들일 때도 엄청난 영업 비용을 지불해야했는데 해외에선 수업료가 어느 정도일 지 예상조차 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하나투어가 수십년 해외에서 쌓아 온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야놀자가 단숨에 돌파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 이전까지 패키지 여행의 최강자 지위를 누렸던 하나투어는 펜데믹 충격이 오히려 약이 됐다. 뻔한 패키지를 버리고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춘 신개념 패키지 상품을 준비 중이다.

여기어때는 야놀자의 발밑을 흔드는 무서운 경쟁자다. 야놀자가 해외에 공을 들이는 사이, 여기어때는 국내 숙박업체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종 액티비티와 여행 컨텐츠들을 숙박과 함께 제공하면서 국내 인지도 면에선 야놀자의 기세를 뛰어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기어때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숙박플랫폼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며 “예전엔 남성들이 여행 코스를 짜면 여성은 따라가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여성이 좋은 숙박을 고르면 그 다음에 코스를 짜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아웃바운드 여행과 관련해서도 여기어때는 일본, 베트남 등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해외 여행지 몇 곳만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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