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스케이팅을 할 때 두 뺨에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좋았다.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에서 전설을 만들어낸 김연아(32)를 보고 스케이트를 시작한 소년은 은반 위에 있는 시간이 그저 행복했다. 타고난 재능에 연습 시간 외에는 음악과 안무연구 등 피겨만 생각하는 열정이 더해지면서 승승장구했다. 수려한 외모와 풍부한 표현력을 겸비한 그에게는 '남자 김연아'라는 찬사가 붙었다. 10일 한국 남자 피겨 역사를 새로 쓴 차준환(21)이 주인공이다.
차준환이 한국 남자 피겨 최초로 올림픽 '톱5'에 들었다. 이날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93.59점, 예술점수(PCS) 90.28점, 감점 1점으로 182.87점을 기록했다. 개인 최고 기록(175.06점)과 올 시즌 최고점(174.26점)을 모두 넘어섰다. 지난 8일 쇼트프로그램에서 99.51점으로 4위를 기록한 차준환은 합계 282.38점을 기록했다. 24명 중 5위로 김연아(2010년 금메달·2014년 은메달) 이후 최고, 한국 남자 최고 성적이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세운 자신의 목표 '톱10'을 훌쩍 뛰어넘은 결과다.
이날 차준환은 마지막 4조 세번째로 나섰다. 자코모 푸치니의 '투란도트'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그는 첫번째 점프 과제인 4회전 점프, 쿼드러플 토루프를 시도하다가 크게 넘어졌다. 차준환의 연기요소 중 가장 성공률이 떨어지는 점프였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던진 승부수였다.
그래도 차준환은 씩씩하게 일어났다. 곧바로 두번째 과제이자 필살기인 쿼드러플 살코를 깔끔하게 성공해내며 기세를 올렸다. 이후 콤비네이션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트리플 악셀 등 남은 과제는 모두 성공해냈다. 스핀, 이너바우어, 스텝 등은 그의 연기를 더욱 풍성하고 우아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올림픽 무대를 마친 차준환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씩씩하게 링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올림픽 5위라는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첫번째 올림픽 도전이었던 2018년 평창 대회에서 15위에 오른 뒤 그의 눈은 계속 베이징을 향해있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19로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있는 캐나다로 가지 못했고 국제대회에 거의 나서지 못하면서 경기감각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국내 스케이트장이 문을 닫아 지방을 전전하며 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차준환의 열정은 껶이지 않았다. 힙합댄스를 배우며 표현력을 늘리고 근력운동으로 점프 능력을 키웠다. 그 결과 올림픽을 앞두고 쿼드러플 점프의 완성도가 올라갔다. 차준환은 이번 올림픽에서 쇼트프로그램에서 1회, 프리프로그램에서 2회 총 3회의 쿼드러플 점프를 시도해 두번을 성공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차준환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3월에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진출권을 2장 따냈고 지난달에 출전한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 최고점인 273.22점을 기록하며 한국 남자 싱글 선수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결국 베이징에서 '남자 김연아'라는 꼬리표를 떼고 '제1의 차준환'으로 우뚝 섰다.
이번 대회 금메달은 '점프 머신' 네이선 첸(22·미국)에게 돌아갔다. 첸은 프리스케이팅에서 무려 5개의 4회전 점프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또한 비 점프요소도 빈 틈 없이 처리하며 총점 332.6점으로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겨 황제' 하뉴 유즈루(27·일본)는 이날 '미지의 영역'으로 꼽히는 쿼드러플 악셀에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여기에 쇼트프로그램의 부진을 만회하지 못하며 최종 4위에 그쳤다. 은메달은 가기야마 유마(18·일본), 평창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우노 쇼마(24·일본)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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