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으면 도태"…전기차 올인하는 일본車

입력 2022-02-11 17:18   수정 2022-02-11 23:57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와 닛산자동차는 2009~2010년 잇따라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자동차를 출시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전기차 불모지’로 분류된다. 지난해 일본에서 팔린 전체 승용차 중 전기차 비중은 0.6%에 불과했다.

일본 자동차 업체 가운데 전기차에 가장 적극적인 닛산의 2020년 전기차 판매량은 6만2678대로 세계 7위에 그쳤다. 혼다는 34위(1만2294대)였다. 1년에 1000만 대의 차량을 파는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도요타의 전기차 판매 실적은 9134대로 41위에 머물렀다.
앞다퉈 전기차 전략 내놔

20세기 초반 자동차 회사로 재빨리 변신하는 데 실패한 마차회사가 도태했듯이 전기차로 전환하지 않는 자동차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따라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최근 한두 달 사이 잇따라 전기차 전략을 내놨다.

도요타의 전략은 전기차부터 수소엔진차까지 모든 차종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닛산은 전기차 물량 공세, 혼다는 전기차 전문업체 변신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기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전자업체 소니는 “전기차에 모든 사업부의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말 2030년까지 전기차 세계 판매대수를 350만 대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200만 대였던 기존 목표를 80% 늘려 잡았다. 10년 안에 전체 판매량의 3분의 1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친환경차 연구개발비와 설비투자 등에 2030년까지 8조엔(약 83조원), 이 중 절반인 4조엔을 배터리를 포함한 전기차에 투자하기로 했다.

30종의 전기차를 새로 출시하고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는 2035년까지 전기차 전문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무게중심을 여전히 내연기관차에 두고 있는 게 특징이다.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면서 전기차 시장도 동시에 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도요타 “1등 수성하며 전기차도”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는 내세울 카드가 많다. 내연기관차가 잘 팔리고 1997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세계 600만 대 규모로 커졌다. 수소연료를 사용해서 모터로 달리는 연료전지차(FCV) 기술도 세계 시장의 61.6%를 차지하고 있다. 2위 현대자동차의 기술 점유율은 31.8%다.

수소엔진차도 도요타가 공을 들이는 분야다. 연료전지차가 수소연료를 사용해 모터로 달리는 자동차라면 수소엔진차는 기존의 엔진을 수소연료로 돌린다. 도요타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엔진 기술의 노하우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도 도요타는 약 1000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500여 건인 2위 LG에너지솔루션의 두 배다.

‘도요타은행’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금력도 월등하다. 향후 5년간 영업현금흐름은 16조6000억엔,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24조엔으로 세계 1위를 놓고 경쟁하는 독일 폭스바겐을 압도한다. “지금부터 전기차에 올인한다”고 결정하면 세계 자동차 기업 중 가장 많은 자금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의 엔진차에 하이브리드, 플러그드인하이브리드(PHV), 연료전지차, 수소엔진차, 전고체 탑재 전기차까지 모든 카드를 보유한 도요타가 전기차에 ‘올인’하지 않고 모든 차종을 다 출시한다는 ‘풀 라인업 전략’을 내세우는 이유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은 “최종적으로 어떤 차를 고르느냐는 고객이 정하는 것”이라며 “도요타는 모든 선택의 폭을 갖춘 회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닛산은 앞으로 5년간 2조엔을 투자해 친환경차 개발을 가속화하고 2030년까지 전기차 15종을 포함해 23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인다는 비전을 공개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주요 시장에서 새로운 내연기관 개발을 중단하고 연구개발 역량을 전기차에 쏟아붓는다는 방침도 밝혔다.

혼다는 2040년부터 내연엔진과 완전히 작별하고 전기차와 연료전지차만 만들기로 했다. 세계 최고 성능의 엔진을 겨루는 ‘F1’ 자동차 경주에서 올린 뛰어난 성적 덕분에 혼다에는 ‘엔진의 혼다’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그런 혼다가 엔진을 버린다고 결정한 데 대해 자동차업계는 놀라워하고 있다.
소니 “전기차에 6개 사업부 총동원”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2’에서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사장은 전기차 진출을 공식화했다. 소니는 그동안 게임 음악 영화 전자 반도체 금융 등 6개 사업부문이 각각 연간 1000억엔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사업재편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업부문 간 협업이 남은 과제로 지적된다. 6개 사업부문이 힘을 모아 실력을 발휘할 사업으로 전기차만 한 게 없다는 판단이다.

CES에서 요시다 사장은 “자동차의 가치를 ‘이동’에서 ‘엔터테인먼트’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에 소니 전기차 전략의 모든 게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소니가 꿈꾸는 전기차는 자동차라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거실’이다. 이를 위해 소니는 멀미 안 하는 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의 주변 소음을 지우는 ‘노이즈 캔슬’ 기술을 응용하고 노면으로부터 받는 차체의 진동을 없애도록 서스펜션을 제어하는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다. 소니의 반도체(화상센서)와 영상·음향기술, 콘텐츠 생산력을 결집하는 것이다. 전자기술과 소프트웨어, 콘텐츠의 융합이 요구되는 전기차 시대를 소니는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로 보고 있다.

전기차 개발에 나선 업체의 공통된 고민은 이익을 낼 수 있느냐다. 미국 컨설팅 회사 알릭스파트너즈는 현재 전기차 한 대당 제조비용이 1만8200달러로 가솔린차의 2.6배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세계 최대 모터회사인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5년 후면 가솔린차와 전기차의 실력이 역전되고 전기차가 가전제품처럼 일반화하는 2030년에는 차값이 2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까지 자동차 회사들은 각각 엔진 등 핵심 부품을 개발했다. 전기차 시대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일본전산의 모터와 같이 일부 기업이 표준화한 제품으로 전체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면 가격 파괴가 일어난다는 게 나가모리 회장의 예상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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