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디지털 접속성 시대의 안보

입력 2022-02-13 17:20   수정 2022-02-14 00:15

지난해 11월 영국 비밀정보부(MI6) 수장 리처드 무어는 공개 연설에서 “우리는 ‘안보 풍경의 극적 전환기’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전환의 요인들 가운데서 그는 ‘디지털 접속성(digital connectivity)’을 강조했다. 영화 속에선 아직도 제임스 본드가 근무하는 기관의 수장이 공개 연설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MI6로선 중국의 흥기에 적응하는 것이 단일 최고 임무”라고 그는 선언했다. 그리고 “온 세계에서 ‘중국제’ 감시 기술이 발견되는 환경에 요원들이 적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지적대로 디지털 접속성의 시대에 적응하려면 그런 환경의 내력을 살피는 것이 긴요하다.

2004년 초 캐나다 통신기기 제조회사 노텔(Nortel)의 영국지사 종업원은 본사 임원이 서버에 접속해 자신과 관련된 문서들을 내려받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반가워서 그 임원에게 문서들에 관해 설명해주겠노라고 이메일로 제안했다. 해당 문서를 내려받은 적이 없었던 그 임원은 곧바로 보안 부서에 알렸다.

곧 임원 계정이 해킹당해 세계 곳곳에서 접속됐음을 발견했다.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임원 7명의 계정이 해킹당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커들은 노텔의 기술 자료와 경영 계획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빼갔다.

범인들의 인터넷 주소는 중국 상하이의 한 빌딩에 있었다. 해킹 능력과 지속적인 침투로 봤을 때 그들은 해킹으로 유명한 중국군 ‘61398부대’ 소속임이 분명했다. 이 부대의 임무는 줄곧 중국의 경제개발계획에서 전략적 산업으로 지정된 산업들의 기술 획득이었다.

그러나 노텔 경영진은 보안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대처하지 않고, 임원들 계정의 암호만 바꿨다. 자연히 중국 해커들의 기술과 자료 탈취는 이어졌다.

이런 행태에 대한 설명은 캐나다 안보정보국(CSIS) 요원이 제공했다. CSIS는 이미 1990년대에 중국 해커들이 노텔에 침투했음을 알고 노텔에 경고했다. 그러나 노텔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 요원이 중국으로 출장 가는 임원들에게 “지금 당신은 중국에 포섭되는 것이다. 한번 가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모두 중국으로 향했다. 그들은 이미 중국에 매수된 것이었다. 중국엔 그렇게 매수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2008년 캐나다 통신회사들의 3세대(3G) 이동통신 기기 구입 계약에서 갑자기 기술력이 향상된 중국 화웨이가 노텔보다 40% 싼값을 제시했다. 계약 수주 실패로 노텔은 이듬해 파산 신청을 했다. 몇 해 전만 해도 9만 명 넘는 종업원에 캐나다 증시 시가총액의 30% 이상 가치를 지녔던 세계적인 통신장비회사가 무너진 것이었다. 노텔의 시장과 기술 인력은 화웨이가 차지했다.

화웨이는 1987년 설립된 회사다. 흥미로운 것은 1986~1990년 중국 전략산업 가운데 통신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별다른 기술이 없던 회사가 20년 만에 세계 제일의 기업보다 40% 싼 가격으로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사업에 입찰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노텔의 기술이 거의 다 중국으로 새나간 것을 가리킨다. 물론 화웨이는 노텔의 기술을 훔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거짓말이 아니다. ‘61398부대’가 노텔의 지식재산을 탈취해 화웨이에 제공한 것이다.

지금 화웨이 장비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여러 나라가 걱정한다. 장비에 뒷문(backdoor)을 설치하지 않아도 화웨이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나 업데이트를 통해 장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MI6의 수장이 공개적으로 ‘중국제 감시 기술’을 걱정하는 것이 이해된다.

우리로선 참으로 난감하다. 이미 들여온 화웨이 장비가 많은데, 모두 화웨이의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중국엔 국가와 기업 사이의 구분이 없어 우리 안보가 고스란히 중국군에 노출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정권이 바뀌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 파격적이고 신선한 연설에서 MI6 수장은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우리는 비밀로 남기 위해서 보다 공개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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