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빈 운동장엔 모래들이 따스하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남기고 간 웃음소리로,
급히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풍향계.
회기 시장 언덕배기
튀밥을 튀기며 사는 할아버지 머리 위에도
옛날을 그리워할 사이도 없이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만큼이나 많은 할말을
사람들은 그저 가슴에 묻고 눈을 맞으며 간다.
고향집 깊은 산속 아기 고슴도치도
눈을 바라보며 나와 같이 눈을 생각할 것이다.
시집 《불태운 시집》(문학동네) 中
초등학교 빈 운동장에 눈 내리는 풍경이 따스하게 연상되는 시입니다. 어릴 땐 수업 중에 눈이 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뛰쳐나가 눈싸움을 하곤 했지요. 왜 자꾸 옛날 생각이 날까요. 눈이 펑펑 쏟아지던 설날 아침,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서 ‘아랍 문자처럼’ 두서없이 흩날리는 굵은 눈송이를 올려다보았어요. 내리는 눈만큼이나 많은 할말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저마다의 사람들과 함께요.
주민현 시인(2017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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