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세계적인 관광 대국 중 하나다. 오미크론 대확산으로 일본이 때아닌 쇄국이냐 개국이냐의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꼽고 있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여행을 할 때면 늘 부러운 것이 있다. 곳곳에 숨겨진 보석같은 소도시, 그리고 소도시 여행의 감성을 더해 주는 료칸, 민슈쿠(民宿) 등의 숙박 시설이다.
2018년 여름, 일본 혼슈 남서부에 있는 시마네현의 마쓰에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2005년 3월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우리와는 다소 악연으로 맺어진 곳이다. 맑은 날이면 시마네현 앞바다에서 멀리 독도와 울릉도가 보일 정도로 예전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마쓰에시의 번주는 고려인삼을 일본 토착 상품으로 변화시킨 일등 공신으로 추앙받는다니, 한반도와의 지리적 근접성을 짐작할만하다.
역사와 정치를 잠시 한 켠으로 치우고 보면, 마쓰에시는 아름다운 일본의 소도시다. 모란 등 각종 꽃의 정원으로 유명한 다이콘지마(大根島)에 있는 유시엔을 비롯해 마쓰에성, 다마쓰쿠리 온천 등 가볼만한 소품 같은 여행지들이 많다. ‘노도구로’, ‘시로겟게’ 같은 심해어(深海魚) 요리들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미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다마쓰쿠리 지역에 있는 료칸들이다. 혼자 묵어도 가격, 음식 서빙 등 모두 부담스럽지 않아 호젓한 소도시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요즘 국내 여행 산업도 변화의 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2년 넘게 막히자, MZ세대들이 전국의 숨은 곳들을 찾아다니며 명소들을 발굴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니, 지방 소도시에도 좋은 숙박시설들이 들어서는 등 모처럼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분위기다. 여기어때, 야놀자 같은 여행 플랫폼들이 이 같은 변화의 일등공신이다. 가격 비교보다는 남들과 차별화된 테마와 스토리가 있는 여행을 원하는 MZ세대들은 여행 플랫폼들이 제공하는 정보 루트를 따라, 그리고 인스타그램 등의 후기를 공유하며 관광 오지나 다름없던 곳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정선에 있는 파크로쉬라는 리조트가 대표적이다. 리조트 외에는 주변에 이렇다할 관광지도 없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곳에서 명상 등 웰니스 프로그램에 빠져 1박에 30만원을 넘나드는 비용을 아낌없이 지불한다고 한다. 대명소노그룹이 운영하는 진도의 쏠비치 리조트도 예약률이 85%를 웃돌 정도다. 경남 하동 쌍계사 아래에 있는 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은 베란다를 스파로 꾸민 특색있는 객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동 관광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어때의 지역별 성장률을 보면 국내 관광 산업이 확실히 바뀌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올 1월과 2년 전 1월을 비교해 2030세대들의 호텔, 리조트, 펜션 소비액이 지역별로 어떻게 차이가 나는 지를 산출했다. 1위는 양양군으로 무려 증가율이 710%에 달했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양양-서울 고속도로가 저녁 늦도록 막히는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던 셈이다. 2위는 옹진군(560%)이 차지했다. 10위권에 대도시(광역자치단체 포함)는 서울(550%)과 제주(5위, 290%) 두 곳에 불과했다. 무주군(310%)이 4위에 올랐고, 6~10위는 홍천군(290%), 태안군(290%), 삼척시(250%), 정선군(230%)이 각각 차지했다. 여기어때 관계자는 “지방 소도시 여행이 워낙 침체돼 있던 터라 성장률이 드라마틱하게 보일 수는 있다”면서도 “서울, 부산, 경주, 제주 등 일부 관광 대도시에만 집중돼 있던 국내 여행이 지역별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소도시 여행의 활성화는 지방 소멸을 막을 몇 안되는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른다. 일본이 인구 감소와 장기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 대국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인구가 전국에 고루 분포돼 있어서다. 이를 가능케 한 핵심은 관광이다.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농축어업 등 1차 산업이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점도 지방 소멸을 막아주는 방파제다. 일본의 시골 어느 곳을 가더라도 깨끗이 정비된 길이며, 아이들이 뛰어 노는 학교들이 건재했던 것은 1차 산업과 숙박업으로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부모 세대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자녀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새로운 여행 문화가 지역 발전의 자양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