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만원 주고 산 게 8억 '대박'…빈티지 시계 인기 폭발

입력 2022-02-14 11:27   수정 2022-02-14 15:13



코로나19 확산 이후 빈티지 시계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식 및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로 돈을 번 젊은 소비자들이 빈티지 시계 시장에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빈티지 시계는 과거 주인의 삶과 경험을 말해주는 제품이다. 전문 수집가와 딜러들은 시계의 출처와 역사에 관한 증거를 모으고, 이를 온라인에 올려 제품의 가치를 크게 높인다. 업계에서는 이를 '톱니바퀴 계보'(genealogy with gears)라고 부른다.

현재 세계 명품 시계 시장 규모는 670억달러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중고 시계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등 경매업체의 빈티지 시계 판매액은 지난 2년간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고 시계가 시장에서 가치 있는 '빈티지 시계'로 인정받으려면 몇 년 정도 돼야 할까. 20년이 됐든 200년이 됐든 빈티지 시계의 가치는 △ 보존 상태 △ 희귀성 △ 제품 내력 등 3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이 가운데 가격에 가장 적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제품 내력'이었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미국 영화배우 배우 폴 뉴먼 수준의 유명 인사가 소유했던 시계가 아니라면 제품 내력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참고로 사상 최고가로 팔린 빈티지 시계는 뉴먼의 롤렉스 데이토나다. 2017년 필립스 경매에서 1780만달러에 판매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제품 내력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로저 미셸 영국 디지털 고고학 연구소(IDA) 이사는 "최근 시계의 내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이제는 비교적 소소한 히스토리도 시계의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군인의 시계, 아마존 트레킹에 나선 모험가의 시계도 요즘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경매 카탈로그에서도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예전보다 시계의 내력에 대한 설명이 많아졌다. 시계 주인의 업적과 사진, 시계가 발견된 경위, 시계의 역사를 추적한 과정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 12월 필립스 경매에서 팔린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대표적이다. 1968년에 제작된 이 시계는 예상보다 60배 높은 가격인 66만7800달러(약 8억 원)에 판매됐다. 위탁자는 이 시계를 2016년 온라인 거래로 5600달러(약 670만원)에 샀다. 이후 시계의 내력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 도서관 기록보관소를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이 여러 사진과 보험 관련 서류들을 찾을 수 있었고, 이 시계가 작가 랄프 엘리슨이 찼던 물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폴 부트로스 필립스 미주지역 시계 책임자는 "시계가 지닌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시계 카탈로그를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브랜던 커닝햄 이스턴코네티컷주립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빈티지 시계를 찬다는 것은 과거 주인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이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엘리슨의 스피드마스터같은 빈티지 시계 판매에 힘입어 세계 중고 시계 시장 규모가 2019년 180억달러에서 2025년 290억~32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를 들어 1975년 이탈리아 육군의 헬리콥터 조종사와 공수부대 지휘관들을 위해 만들어진 브라이틀링 시계는 지난해 1만8900달러에 팔렸다. 1960년대 미 해군 잠수부용 시계로 제작된 토르넥-레이빌은 12만6000달러에 판매됐다. 미국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이 찼던 1969년식 태그호이어 모나코는 220만달러에 손바뀜했다.

최근에는 기념 시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예컨대 피자 체인 도미노피자가 모범 가맹점주에게 주는 롤렉스 에어킹이 대표적이다. 이런 제품들은 중고 시장에서 1만~2만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IBM이 25년 근속 직원에게 주는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는 5000~6000달러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빈티지 시계에 대한 인기가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셸 이사는 "사람들은 더 희귀하고 좋은 물건을 찾는다"며 "특정 시기에 특정인이 착용한 시계는 희귀품 중에서도 희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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