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58·사법연수원 17기·사진)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끈 사법부의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 청구된 판사다. 그런 그가 법무법인 해광의 대표변호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다.
14일 서울 서초동 해광 본사에서 만난 임 대표는 “30년간의 판결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에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수사당국에서 배임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 기업의 창의적 투자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법리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사법농단 재판개입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지만 1, 2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상고해 현재 대법원에서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임 대표는 “오랜 기간 몸담은 법원을 떠나며 법원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서 송구하다”고 말했다.
판사 30년 생활의 소회도 밝혔다. 임 대표는 “1991년 판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판사 수가 1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3000명으로 늘었고 근무 여건도 이전보다 좋아졌다”며 “하지만 그만큼 법원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도 향상됐는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그는 “판사 출신으로서 아쉬움과 책임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판사 시절 해당 분야의 ‘이정표’ 역할을 한 판결을 여럿 내렸다. 대표적 판결이 2008년 옥션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2010년 키코(KIKO) 소송이다.
판사봉을 잡았던 임 대표는 두 재판에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과 키코 계약으로 손해를 본 기업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개인정보 유출의 경우 “옥션 측이 보안사고 방지를 위해 정보통신망법에서 정한 의무를 다했다”고 판단했다.
키코 판결에서도 “키코 가입으로 손해를 본 회사가 기회비용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불합리한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이후 고법과 대법에서도 인용됐다. 임 대표는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며 “항상 내 판결이 상급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표를 낼 각오를 했다”고 돌아봤다.
서울·대구·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대표들에 더해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임 대표까지 합류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 대표는 “작년에 검찰 조사와 재판까지 겪으면서 당사자가 돼 법률 서비스를 체험해봤다”며 “법률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사건을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특히 개인적으로 배임에 대한 법리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그는 “배임은 경영상의 판단과 경계선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배임을 신중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기업가정신을 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액수 등에 근거해 기계적으로 형을 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아무리 판결이 옳다고 해도 기계적 양형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이 기업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최진석/사진=김범준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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